낯선 공간과의 만남
여행은 낯선 공간과의 만남이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나를 맡기면 그곳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금방 친구가 된다. 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 그래서 여행은 나를 만나는 기회이다.
특별히 선교 여행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직접 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하나님은 결코 홀로 일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기쁨으로 순종하는 사람과 함께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 주목하지 않으면 봉사활동으로 그치고 만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행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선교 여행을 다니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몇 가지 원리가 있다.
“선생님! 언제 밥 먹어요?”
“언제 출발해요?”
“몇 시에 가나요?”
여행을 가면 호기심 주머니가 가득 찬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다. 특별히 장난기 많은 수다쟁이 ENFP 중학생들에게는 호기심 주머니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여행이다. 무얼 먹는지, 어디에서 자는지, 언제 가는지 등 묻고 싶은 것이 넘쳐난다. 호기심은 위대한 배움으로 가는 신호등이다. 그 호기심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배움의 결과를 달리한다. 중학교 1학년과 2학년은 아직 스스로 무엇을 완벽하게 하기에는 더 시간이 필요한 나이다. 왕성한 탐험가처럼 질문을 다 받아주었다가는 교사가 나뒹굴러 질 것이다.
문제는 교사다. 6명의 교사가 31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모든 질문을 받아낼 수는 없다. 호기심은 바로 채워진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호기심은 깊은 성찰과 끈질긴 반복을 통해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갈 때 배움으로 이어진다.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성장한다. 즉각적인 답변으로 배움을 멈추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학생들의 쏟아지는 질문은 사실 방금 전 교사가 이야기했거나 잠시 후면 알게 될 지식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사색의 시간을 갖거나 인내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볼 수도 있고 조급함을 잠재울 수도 있다.
“주님께 묻는다!”
학생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우하나에서는 이렇게 훈련한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먼저 그것을 허락하신 주님께 물어본다. 그러면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거나 정말 창주주 하나님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한다. 훈련 초반에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정신을 못 차렸는데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까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주님께 질문하며 주님의 뜻을 묵상하는 학생이 늘어간다. 주님과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 수 있어서 좋다. 바쁜 하루를 살다 보며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눈에 보이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내 경험과 상식으로 일을 처리할 때가 많다. 그럴 때 가던 길을 멈추고 주님께 묻는 잠깐의 시간은 나를 그분 앞으로 인도한다.
구름을 쪼갤 듯한 함성이 하늘을 찔러 깜짝 놀랐다. 바로 옆 월드컵 경기장에서 들려오는 응원 소리였다. FC서울과 김천상무의 K리그가 있는 날이어서 경기장 주변은 이미 인산인해다. 예배 전에 저녁을 먹으러 경기장에 있는 푸드코트에 갔지만 인파 속에 묻혀 주문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리가 없었지만 주문먼저 했다. 열흘간 한국 음식을 못 먹을 것 같아서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빈자리 찾기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웠다. 키 큰 영우샘이 용케도 빈자리를 하나 찾아서 겨우 자리에 앉았다. 저 멀리서 익숙한 누군가가 손을 흔들며 찾아온다. 영상과 사진 담당인 자영샘이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제주도에서 공부하다 어제 방학한 9학년 영민이가 잘 다녀오라며 안부 전화를 했다.
함성 소리가 파묻힐 만큼 우하나의 찬양과 기도는 성령의 임재로 가득했다. 말씀을 듣고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총연습을 마치니 시간은 저 멀리 가버렸다. 학부모님이 보내주신 피자를 먹고 간단히 씻고 누우니 시간은 밤 12시다. 에어컨을 켜고 수건을 베개 삼아 바닥에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짧은 하루가 끝났지만 긴 열흘이 앞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딱딱한 방바닥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겨우 잠에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창문이 흔들릴 만한 큰 진동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을 깼다.
“크르릉~! 크르릉~!”
탱크가 지나가는 것이 분명했다. 밖을 내다보니 비가 퍼붓고 있었다. 낮에 인사하던 플라타너스 가지가 호객행위하는 바람풍선 마냥 춤을 추고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듯 양동이로 비를 쏟아붓고 있었다. 아침 7시에 캐리어와 공용 짐을 가지고 지하철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옷이 다 젖을까 봐 걱정이었다. 저녁에 학생들과 함께 아침 날씨를 위해 기도했다. 비는 그칠 줄 몰랐지만 내일을 위해 다시 바닥에 누웠다.
이번에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운율로 더 큰 탱크 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렸다. 머리 옆 창문 너머에서 반복적으로 벼락이 치고 흔들리는 나무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였다. 내일 아침이 걱정되었다. 그런데 잠시 후 전혀 다른 주파수가 계속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탱크가 분명했다. 이 시간에 어디서 훈련이 있나 둘러보았지만 탱크는 없었다.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코를 골고 있었다. 탱크 소리라고 표현하기에 충분한 괭음이었다. 일정한 운율과 규칙이 반복되어 잠이 들만 하면 소리가 고음을 치고 다시 잠을 자려면 시동이 얼려 잠은 달아나버렸다.
아침 6시에 눈을 떠 창문으로 달려갔다.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을 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밖에 우산 쓰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없고 젖은 도로를 바쁘게 걸어 다니는 사람만 있었다! “할렐루야” 이렇게 좋을 수가! 어젯밤에 학생들과 함께 기도했는데 이렇게 빨리 기도 응답이 되다니 놀라웠다.
다음 날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나만 고통스러운 밤을 보낸 줄 알았는데 한 사람을 제외한 13명 모두 잠을 못 잤다고 한다. 소곤대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탱크의 주인공이 그가 아니라 나였다고 한다. “이런!” 황당했다! 결국 한 증인으로 인해 누명을 벗긴 했다. 공용 짐을 모두 나르고 정리하느라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러셨을까를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럼에도 선교 여행하는 10일간 탱크와 같은 방을 사용하며 지냈다. 탱크는 어느 날은 정상 운행 했지만 어느 날은 고장 난 듯 조용했다. 그도 나도 피곤했기에 선교 여행을 마음껏 누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