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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샘 Aug 05. 2024

돌아오지 않는 둘째 딸

몽골 선교 여행(1)

저 멀리서 얼굴을 내밀며 플라타너스 가지가 바람에 손을 흔든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설렜다. 나눔교회는 4층 규모의 적당한 크기지만 올 때마다 생기와 열정이 느껴진다. 두 번 왔다고 내 교회처럼 편안함이 느껴진다. 교회 앞 산책로의 플라타너스는 훌쩍 키가 크고 튼튼해진 것 같다. 남쪽 창문 선반의 다육이도 씩씩하게 자라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한다. 익숙한 공간에 쉴 새 없이 눈인사를 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흘러갔다. 지난겨울 우하나 1기 학생들과 필리핀에 갈 때 한번 왔다 갔을 뿐인데 다시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며칠 전부터 서울에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 난 곳이 많다더니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기 위해 바닥에 양동이가  사이좋게 입을 벌리고 앉아있었다. 샤워시설 없는 남자 화장실 세면대에 머리를 디밀며 씻던 1기 아이들의 모습이 저 멀리 아른 거린다. 


우하나 2기 37명의 용사들이 모였다. 여름 방학을 잘 보냈는지 살이 포동포동하고 표정이 살아있다. 일주일 만에 보는데도 얼마나 반갑던지  찰싹 달라붙어 수다를 그칠 줄 모른다. 저 나이 때는 세상에서 친구가 만한 즐거움이 없다. 지옥 빼고는 친구와 어딜 가든 즐거울 때다.  7시에 예배가 시작되었다. 소예배실은 벌써 찬양의 열기가 가득하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방학 동안 인스타와 유튜브, 게임에 빠져 지내다 찬양과 함께 자신을 돌아본다. 오늘부터 핸드폰 사용을 못한다고 했더니 이미 각오한 듯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핸드폰 대신 나눠준 하늘색 작은 포켓 성경이 이제부터 용사들의 인도자이며 친구가 된다. 이 포켓 성경이 선교 기간 내내 일용할 말씀을 줄 것이다. 성경 읽기를 인스타 보듯 하고, 묵상하기를 유튜브 보듯 하여 평생 말씀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습관 들이자고 했다. 언제까지?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멜로디를 따라 가사에 영혼을 담아 부르면 주님 앞에 서 있는 것 같아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곧 나를 삼켜버리는 눈물바다에 빠진다. 그날도 그랬다. 


서울 가는 길에 안성 휴게소에 들러 커피 한잔에 잠을 깼다. 졸릴 때 시원한 아메리카노 만한 것이 없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박한배 선생님이 스타리아로 선교팀 짐을 날라줘서 서울까지 편안하게 갔다. 커피를 들고 나오는데 휴게소 화장실 앞에서 70살쯤 되어 보이는 한 노인을 만났다. 전단지를 나눠주길래 별생각 없이 받아 가방 속에 넣었다. 우하나 1기 출발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기 출발을 하다니 세월은 언제나 뒤돌아보면 초고속으로 흐른다.  


주차장에 가득한 차 사이로 스타리아를 찾아 걸어가다가 아까 받은 전단지가 기억났다. 전 같았으면 받자마자 바로 휴지통에 넣었을 텐데 이번에는 왠지 읽어보고 싶어졌다. 


'혜희가 실종된 지도 벌써 25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1999년 2월 13일. 송탄여고 2학년에 다니던 딸이 평택시 도일동 하리 근처에서 밤 10시경에 30대 초반의 남자와 함께 내리고 나서 실종되었습니다. 딸의 이름은 송혜희, 지금은 42세. 행방이 묘연한 딸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술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아내는 심장병과 우울증에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홀로 남은 아버지도 죽을 결심을 했지만 큰 딸을 두고 차마 떠날 수 없어 매일 전단지를 돌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딸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딸을 찾는다면 심장이라도 팔아서 보답하겠습니다.

 -이 못난 혜희 아빠 올림-'


시뻘건 전단지의 글을 읽으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딸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쑤시고 아팠을까? 오랜 세월을 하루도 편히 눕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도 쓰려왔다. 참혹한 시간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노인의 얼굴에는 몇 톤이 넘는 무거운 고통의 그늘이 묻어 있었다. 다시 돌아가 노인의 손을 꼭 잡고 용기 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쏟아질 눈물을 감당할 용기가 없어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이 땅에 이와 같은 생이별을 한 가정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며 더 가슴이 아파온다. 


낮에 만난 노인을 생각하며 예수님이 떠올랐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끝까지 인내하시고 자기 목숨까지 버리신 분이다. 몽골로 떠나는 우리의 여정도 그런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다. 잃어버린 딸을 찾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몽골의 한 영혼을 찾고 싶다. 마치 어둠 속에서 헤매던 나를 그렇게 찾아 주신 것처럼 말이다.  저녁 시간에 노인의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전하며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 결국 몇 번을 중단하다 간신히 이야기를 끝냈다. 혜희가 살아있어 속히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사랑에 굶주린 몽골의 아이들이 있는 한 우리의 선교 여행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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