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정샘 Mar 08. 2024

그놈이 출몰했다.

필리핀 선교지에서의 에피소드#

뿔로 도착 첫날밤이다. 남학생들은 숙소 문을 열자 얼음이 되었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캬~~~!! 쌤~~~~~!!’

'왜 무슨 일이야?'

‘여기요! 여기 엄청난 게 있어요! 이런 거 처음 봐요!’

‘와~~~~ 우!’


드디어 나올게 나왔다. 지난여름 답사 때 출몰했던 것이 또 나올 줄이야. 이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한 것이 있긴 하다. 일망 타진 하려고 다이소에서 사 온 파리채 세 개다. 1층 거실에 어른 손가락 만한 바퀴벌레가 손님을 기다렸다는 듯이 남학생들을 향해 머리를 치켜든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괴생명체를 처음 본 중학생들은 전기 충격을 받은 것 마냥 소리를 지르며 날뛴다. 이민가방에 넣은 파리채 총을 꺼내기 전에 기습적으로 나오다니! 준비태세를 하기 전에 선제공격을 당해 우리 팀은 완패를 당하기 직전이다. 역시 전쟁은 선공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그때다. 태연하게 옆에 있던 선교사님이 신고 있던 슬리퍼를 손에 쥔다. 그리고 한 방에 휘둘러 내리쳤다. '핏~!' 하며 뭔가가 사방으로 튀겼다. 그제야 전투가 끝이 났다! 평정을 찾았다. 다행히 숙소는 2층이다. 그날 저녁 1층에 내려갈 때는 꼭 파리채를 들고 갔다. 안타깝게도 화장실이 1층에 있었다.   


'꺄~~~~ 악'


다 잡은 줄 알고 안심하고 욕실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또 나올 줄이야. 작은 크기의 바퀴벌레는 이제 쳐다도 안 본다. 오히려 귀엽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곳 필리핀 바퀴벌레는 사람을 향해 달려온다. 보통은 사람을 보면 도망쳐야 정상인데 뿔로 바퀴벌레는 너무나 대범하다. 아무리 커도 도망가면 파리채로 내리칠 텐데 통통한 바퀴벌레가 뒤돌아서서 나에게 달려들면 얼굴로 날아올 것만 같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결국 A동 남자 숙소에는 첫날 규칙이 하나 만들어졌다. A동 숙소에는  방이 두 개 있다. 한 방에는 에어컨이 나오고, 또 다른 방에는 선풍기만 있다. 그래서 바퀴벌레 한 마리를 잡으면 에어컨 방에 잘 수 있게 했다. 바퀴벌레가 언제 출몰할지 아무도 모르지만 아래층에 내려갈 때마다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시시때때로 들려오는 비명 소리 말이다.

 

'출몰!!!!'


이렇게 외치면 건수, 예건, 요셉이가 파리채를 소총처럼 들고뛰어 내려간다. 엉덩이를 뒤로 쭈~욱 빼고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펜싱 선수처럼 왔다 갔다 거리를 잰 다음 잽싸게 내리친다. 탕! 탕! 탕! 성공한 듯 하지만 살짝 빗맞았다. 다시 일어서서 달려들 자세다. 이때 등을 보이며 도망가서는 절대 안 된다. 만약 놓치기라도 하면 바로 얼굴로 날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상상만 해도 징그럽다. 2선 팀으로 교체! 뒤에 있던 건수가 다시 앞으로 나와 펜싱 자세를 취한다. 서너 번을 내리친 다음에야 겨우 한 마리를 처단한다. 


파리채의 스윙 소리가 담을 넘어 바퀴벌레 소굴까지 들린 것 같다. 내일 또 다른 바퀴벌레를 몰고 오겠지! 필리핀은 사람도 왜소하고 닭도, 차도, 건물도 모두 작은데 오직 바퀴벌레만 광대하게 크다. 


뒤처리는 예건이 몫이다. 죽은 바퀴벨레를 휴지에 돌돌 말아 변기에 던지면 된다. 그런데 변기 수압이 약해 휴지만 내려갈 뿐이다. 죽은 바퀴벌레는 수면 위로 동동 떠서 예건이 눈동자를 노려본다. 옆에 있는 바가지로 여러 번 물을 들이부어야 잠형 하며 저 멀리 사라진다. 휴~~!


하루 사역을 은혜롭게 마치고 밤에 숙소 문을 열 때는 모두가 초긴장한다. 내가 열쇠로 문을 열고 전등 스위치를 켜면 아이들은 전투태세로 공격을 준비한다. 이런 일이 선교 기간 내내 일어났다.


"셋, 둘, 하나, 오픈! 어택!!!"


이렇게 실전 게임하듯 남자들은 숙소에 로그인한다. 며칠이 지나자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몸을 닦던 건수가 방방 뛰며 소리를 쳤다. 온몸에 무언가 새빨간 것이 기어 다니고 피부를 물고 머릿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자세히 보니 붉은 개미가 가방과 옷을 모두 점령해 버렸다. 요셉이, 건수, 성민이의 가방이 공격을 받아 초전 박살 났다. 할 수 없이 가방과 모든 옷을 꺼내 강력 살충제를 뿌렸다. 이 살충제는 살짝 닿기만 해도 개미가 그대로 쓰러진다. 이렇게 강력한 살충제는 처음 본다. 결국 세 명은 가방과 옷에 살충제를 뿌리고 정리하느라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에 들었다.

 

그날 저녁 곰곰이 생각했다. 이들의 작전 본부가 어디일까? 1층 화장실과 싱크대 배수구가 출입구라는 것을 알아냈다. 여기서 한 가지 비밀을 말해야 할 것 같다. A동 남자 숙소 대문 앞에는 잘 보이지 않는 하수구가 하나 있다. 지난여름에 답사 왔을 때 발견한 것이다. 어둠이 짙은 밤에 잠깐 밖에 나왔었는데 깜짝 놀랐다. 하수구로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는 동물처럼 줄지어 들락거리는 시커먼 벌레를 목격한 것이다. 그때는 거대한 바퀴벌레의 행진에 조용히 뒷걸음질 치며 일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떼를 지어 자기 성으로 들어가는 바퀴벌레를 잘 못 건드렸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게다가 이 하수구는 우리가 묵고 있는 A동 숙소와 바로 직결되어 있다. A동 숙소 밑에 바퀴벌레 군대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바퀴벌레는 1층에서만 나온다. 잠을 자는 2층 에어컨 방에는 출몰하지 않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뿔로를 떠나는 마지막 날 밤이다. 화장실 안쪽 벽에 뭔가가 붙어있다.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 화장실로 들어가는 하음이를 노려볼 뿐이다. 5분이 지나도 벽에서 떨어질 듯 말 듯 미동도 하지 안 난다. 깜짝 놀라 하음이는 화장실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가만히 보니 도마뱀이다. 휴~~! 그래도 다행이다. 어디서 들어왔을까? 


선교지에서 일 주일 넘어가자 국룰이 생겼다. 1층에서 볼일이 끝나면 2층 방으로 후다닥 올라간다.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가 나면 파리채를 잡는다. 선교지에서의 마지막 밤을 무사히 보내야 할 텐데. 소등을 하려는 찰나 무언가 찜찜했다. 


'저기요!'


에어컨 위에 손바닥만 그놈이 바닥에 누운 우릴 노려보고 있다. 나와 윤이, 요셉이, 시현이, 하음이 중 누구 얼굴에 날아갈까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2층 에어컨 방에 출몰하다니! 모두 비명을 지르고 뒷걸음질 쳤다. 정신을 차려 무언가를 찾았다. 파리채를 가져오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만약 저 녀석을 잡지 못한다면 우리는 오늘 밤을 꼴딱 새워야 한다. 한방에 내리쳐야 하는데 이를 어쩐담! 바닥에 있는 가이드북을 들었다. 


‘철썩~~!’

‘꺄~~~~ 악!’


놓쳤다. 그놈은 이불 사이로 파고들었다. 아기 주먹만 한 바퀴벌레가 이불 사이를 헤집고 전력질주한다. 놓치면 안 된다. 재빠르게 이불을 들어 다시 내리쳤다. 에어컨 방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조준! 발사! 연발을 날린다.

 

‘철퍼덕~~!’

‘피쉭~~!’


그제야 멈췄다. 2층 에어컨 방에 베란다로 통하는 문이 하나 있는데 문 틈새로 들어온 모양이다. 요셉이가 누운 곳 바로 옆이다. 세상에 안전한 장소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피곤했는지 남학생들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이면 그놈이 없는 집으로 돌아간다. 꿈만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