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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쌤 Oct 19. 2021

아이의 마음은 진실하다

교실 속 이야기 줍는 선생님


#1.


승운이는 가위, 바위, 보의 '바위' 같은 아이다.

생긴 모습도 바위같이 듬직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웬만하면 꿈쩍 않는 모습이 바위를 떠오르게 한다.

3월 내내 어떻게 하면 1학년 아이들이 학교가 재밌다고 여기게 할까.

어떻게 하면 노는 것처럼 한글 공부, 숫자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우리 동학년 선생님들의 최대 관심거리였다.

아이들을 꼬드기려고 노래를 하고 놀이를 하고, 그리기를 하고, 만들기도 한다. 

넓은 학교를 구경시켜주기도 하고 평소에는 전혀 갈 일이 없는 교장실에도 데리고 간다.


1학년 아이들은 숨김이 없다. 

교장선생님께도 "목소리가 이상해요. 어린아이 같아요."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1학년이다.

그런데, 승운이는 반응이 없다.

표정도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대뜸 한마디 한다.

"집에 언제 가요?"....



승운이는 3월 한 달간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았다. 

종이접기를 할 때만 손이 부지런히 움직일 뿐, 언제나 두 손이 주머니에 들어있다. 

그 모습이 활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표현인 것만 같아서 마음이 쓰였다. 

걸을 때에도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심지어 뛸 때도 그랬다. 

위험하니 손을 빼고 걸으라고 말해도 그때뿐이다.

그런 승운이가 하도 답답해 "승운아, 거기 뭐 있어?" 하고 물었다.

속으로 주머니 속에 꿀단지라도 숨겨놨냐? 하는 마음으로 던져본 말이다.

그랬더니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한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더니, 더 구체적으로 "팔찌가 있어요. 엄마가 만들어 준 거예요." 하는 거다.

"봐봐?" 했더니 정말이다.

쪼끄마한 팔찌를 주머니에 넣고 하루 종일 만지고 있었던 거다. 

엄마가 만들어 준 팔찌는 녀석에게 묵주 같은 의미였던가 보다. 

너 많이 불안했었구나.

불안할 때마다 그 조그마한 팔찌를 조물거렸을 승운이에게 자꾸만 손을 빼라고 해 미안하다. 





코로나 상황이라 교실 풍경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짝꿍과 같이 앉고 옹기종기 모여 놀던 그 모습이 아주 옛 풍경처럼 느껴질 만큼

이제는 거리 두기로 혼자 떨어져 앉고 친구들과 거리를 두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할 지경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친구'를 뺏을 수는 없다.

더구나 갓 입학한 아이들에게 친구는 선생님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하다.

친구를 알아가기 위해 조금씩 떨어져 짝 활동도 하고 모둠활동도 한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하는 1: 다수의 활동보다는 친구들과 하는 모둠활동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승운이는 모둠활동을 할 때마다 내게 오는 거다.

"이건 안 할래요."....

처음에는 이 아이의 거부가 당황스러웠다. 

(안하다니...?) "왜? 어디가 불편해?"

"아니요. 이건 내가 싫어해요. 안 하고 싶어요."

"..... 그래? 그럼 이번에 승운이는 친구들 하는 걸 보자. 보다가 하고 싶어지면 하는 거야." 

"네..."


녀석은 자신의 의사가 받아들여졌다고 느꼈는지 그 뒤에도 "안 하고 싶다.", "이건 내가 싫어하는 거다."라며 활동을 거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숫자카드로 수학 공부를 하자고 교과서에 있는 카드를 떼라고 했더니 또 안 하고 싶단다. 오늘은 수학 공부를 안 하고 싶은 것이 이유란다. 

이건 아니지, 싶다. 오늘은 안된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겠군.


"만약 선생님이 오늘 기분이 안 좋네, 아이들 가르치기가 싫어. 그러니까 오늘 너희들 아무렇게나 놀아. 하면  승운이는 어떨것 같아? 만약에 아빠가 오늘 회사 가기가 싫어. 그러니까 안 갈래. 하고 회사에 안 가면 어떻게 될까?..... (잔소리...)

싫은 것도 참고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거야. 학교에서는 그런 일도 연습해보는 거야. 이제 승운이도 형님이 되었으니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 해. 승운이가 어렵다면 선생님이 도와줄게. 선생님하고 함께 하면 돼. 그렇지만 이제 하기 싫다고 안 하는 것은 안 돼."

어쩌고저쩌고 길었지만, 결국 내 말의 결론은 "네 맘대로는 안 돼."라는 거다. 

결국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숫자카드를 떼어내 수학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런데 막상 수학 공부를 시작하니 숫자카드를 번쩍번쩍 들며 잘 참여한다.

안된다고 하길 잘했다 싶다.





아이들과 꿈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집에 가서 잘 생각해 보고 월요일에 함께 이야기하자고 했다. 

알림장에도 안내해 부모님과 함께 생각해 보도록 했다. 

주말 동안 집에서 부모님과 이야기를 해 보았는지, 준비가 잘 되어있어 아이들은 꽤 발표를 잘 했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 화가가 되고 싶다는 아이, 축구를 좋아해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 엉뚱한 매력이 있는 태겸이는 발명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승운이.

친구들이 모두 발표를 끝낼 때까지 발표를 하지 않더니 마지막에 겨우 일어나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자기는 하고 싶은 일이 없단다.

......

뭐, 아직 하고 싶은 일이 없을 수도 있지.

꿈을 못 찾은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나는 그래,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면서 승운이를 자리에 앉혔다.


학부모 상담 시간에 이 에피소드를 전했다. 그런데 엄마가 깜짝 놀라시며 속상해했다.

주말 내내 아이가 꿈에 대해 고민하고 어젯밤에는 발표 연습까지 했다는 것이다.

"초밥을 좋아하니까 일식집 주방장이 된다고 할까?" 하다가 "살찔까 봐 안되겠어." 하고, "범죄의 흔적을 찾는 특수 요원이 되고 싶다고 말할까?" 하다가 "엄마, 나는 피를 무서워해서 안되겠어." 하고... 아무튼 주말 내내 무엇을 발표할 지 고민을 하다 결정을 했고 꽤 열심히 발표 준비를 했단다. 그런데 학교에 와서 결국 "하고 싶은 게 없어요" 했다고 하니, 속상할밖에...


어머니와의 상담을 통해 나 또한 깜짝 놀랐다.

나는 승운이가 무기력하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게으름을 피운다고 여겼다.

그런데 승운이는 그런 게 아니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툭 내뱉어 버리면 쉬울 일을 내뱉는 말의 책임감을 더욱 깊이 느껴 말을 아끼는 아이였다.


속이 깊은 아이.

생각이 너무 많아 말을 아끼는 아이.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지만,

친구를 돕는 일에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이. 

그런 아이가 승운이다.



승운이가 접어준 종이학 두 마리. 


종이접기를 좋아하는 승운이가 며칠째 가방에 넣고 다니며 끙끙대다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내게 내민 종이학 두 마리.

아이의 마음에 진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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