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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쌤 Oct 19. 2021

1학년 선생님도 1학년이다

<부끄러운 교사의 고백> 



왜 그런지 이 녀석을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다. 


다둥이 자녀를 키우는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자식 중에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단다. 그래도 더 아프고 덜 아픈 손가락은 있단다. 교실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만났는데도 왜인지 더 정이 가고 예쁘게 보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밉상인 아이도 있다. 

태인(가명)이는 그중 후자다. 하라는 대로 안 하고 제멋대로 굴어서...라는 이유를 붙이기엔 딱 맞지가 않다. 똑같이 까불어도 속으로 그리 밉지 않은 아이도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태인이가 계속해서 소리를 냈다. 실내화로 책상을 툭툭 계속해서 치다가 내가 쳐다보니 멈춘다. 그러더니 연필로 책상을 또 툭 툭 툭 쳐댄다. 하지 말라고 하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좀 있으면 또 다른 방법으로 계속해서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냥 무시하려고 해도 자꾸만 귀에 거슬린다.

태인이에게 유독 짜증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저 소리 때문인 건가...


1학년 아이들에게 손을 움직이는 건 매우 중요하다. 대근육만큼이나 소근육 발달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매일 종이접기를 하나씩 한다. 한글이나 수학 공부를 하면서 그 속에 나오는 내용과 관련지어 종이접기를 하는 것이다.

토끼, 강아지, 코끼리, 새.. 완성된 동물은 종합장에 붙이고 예쁘게 배경도 그린다. 내 그림에 어울리도록 문장도 한 줄 써본다. 아이들이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예. 쁘. 다.

그런데 태인이의 완성된 그림은 늘 마무리가 비슷하다.

무시무시한 칼, 무언가 부서지고 파괴된 그림, 그리고 그림을 꽉 채우는 빠알간 피. 

이 녀석에게 못마땅한 기분이 드는 건 이런 그림 때문인 건가...


무언가 꼭 다른 길로 조금씩 벗어나는 녀석에게 매번 퉁박을 주다가 그런 내 모습에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그저 나랑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녀석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혹 이 녀석을 미워하는가 싶어 멈칫하게 된다. 녀석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내 마음속 부채감을 덜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녀석의 다른 면을 찾았다. 이렇게 잠깐씩 내 마음을 옆에 치워놓고 녀석을 보다가, 내 마음을 장착하면 또다시 제자리다.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을 먹고 텃밭에 들리거나 학교 주변을 산책하거나 운동장 한쪽에 그려진 놀이공간에서 잠깐씩 놀곤 했다. 그날도 적당히 텃밭에 들러 교실로 들어가려 하는데 제발 놀고 싶단다. 교실로 들어가 장금이 만화를 보여주겠다고 하는데도 달팽이 놀이가 더 하고 싶단다.

지난주부터 졸라대는 녀석들의 말을 몇 번이나 거절했기 때문에, 그날은 덥지만 들어주기로 했다.


남자팀과 여자팀을 나누어 달팽이 놀이를 했다. 달팽이 방향대로 뛰다가 만나면 가위바위보를 하고 이긴 사람은 '여름'에 관련된 도구를 말하는 거다. 나름 통합 수업과 연계된 놀이다. 아무튼 이 단순한 놀이를 몇 번이나 했는데도 아이들은 계속하자고 한다. 누가 몇 점을 냈는지까지 따져가며 꽤나 진심이다. 이전까지 점수가 남자팀과 여자팀이 동점이어서 그날은 다들 이기겠다고 열의가 가득 차 있었다. 


왁자지껄, 그래도 오랜만에 나와 좋았는지 신나게 뛰었다. 너무 좋아하는 모습에 5분만 더 놀게 해 줘야지.. 싶었는데 웬걸. 너무 길었는가 보다. 애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달팽이 줄을 무시하고 마구 달리는 아이, 친구의 실수를 보며 자기 팀이 질까 봐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 앞으로 가라고 밀치는 아이. 그러다 결국 한 아이가 넘어졌고 "으앙~" 큰 소리로 울어댔다.

그대로 스톱.

그렇게 놀이는 중단되었고 내 마음이 엉망인 채로 교실로 들어왔다.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고 버럭 하려는 욕망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입술에 힘을 꽉 준 채로.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선생님, 여기가 아파요.", "선생님, 무릎이 까졌어요.", "팔꿈치가 까졌어요." 하며 보건실에 가야겠다는 아이들이 5명. 아이들은 중단된 놀이가 아쉬울 뿐, 내 안에 치미는 화를 보지 못한다.

'1학년이잖아. 1학년이잖아.' 

이 말을 곱씹으며 몰라서 그런 거니 다시 가르쳐야겠다고 겨우 이성을 차리고는 화장실에 가서 땀을 닦고 오라고 시켰다. 그 사이에 다친 아이들에게 연고를 발라주었다. 


그런데, 한참 후 교실로 들어온 태인이. 

아주 머리를 감고 나타났다. 온몸이 젖은 채 돌아와서는 목욕한 강아지마냥 머리를 털어댔다. 신이 난 녀석을 보니 가까스로 꺼졌던 내 마음에 화려한 불꽃이 일었다.

"아주 미운 놈이 미운 짓만 하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신이 났던 녀석은 금방 풀이 죽어 제자리로 돌아왔고 "그러다 감기 걸리잖아~!" 하고 둘러댔지만, 사실 그 말에 내가 더 화들짝 놀랬다. 속마음이 밖으로 나온 듯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적당히 둘러대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못했구나... 녀석에게 부채가 또 하나 늘었다. 이 빚을 언제 다 갚을까.

텃밭에서 가지를 따랬더니 두 개를 따서는 칼싸움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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