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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쌤 Oct 21. 2021

글 쓰는 선생님이 되었습니다(1)

<나는 대한민국 평범한 교사입니다.>

정말 싫었다. 전화기에 울리는 뒷번호를 볼 때마다 등줄기가 찌릿하고 섰다. 또 어떤 것으로 사람 성질을 긁어놓을까, 이번에는 몇 시간이나 시달려야 하나,  번호를 보자마자 심장이 두근두근 댔다. 아침에 지각한 아이에게 "내일은 좀 일찍 와라~"하면 "우리 아이한테 지각이야! 하고 말씀하셨어요? 우리 아이 생기부에 '지각'이라고 표시되는 거예요?" 하고 전화가 오고 하루를 정리하며 아이 스스로 체크하는 생활 기록장 급식란에 X표라도 쳐 가면 "우리 아이가 밥을 안 먹나요? 그럼, 선생님은 매일 밥을 다 먹으세요?" 하고 전화가 온다. 한번 전화를 하면 기본 한 시간은 붙들려있어야 했는데 퇴근 시간이 지나고 유치원 아이를 키우고 있고 하원 차에서 아이를 받아야 한다는 내 말에 " 그건 선생님 사정이잖아요!!!" 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학부모였다.


"L자 파일, 20개 진짜 안 샀어요?"   

급기야 그녀는 내게 어느 문구점에서 외상을 하고 갚으라는 사진이 왔다며 그 영수증 위에 남편 휴대폰 번호가 찍혀있었다며 어떻게 선생님이 학부모 번호를 사칭하고 외상을 하고 다닐 수 있냐며 따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학교에서 물건을 살 때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교감선생님께서 한 시간이나 설명을 해주었고 그 문구점에서도 주인아주머니가 자신이 나이가 많아 실수로 번호를 잘못 보냈다고 해명까지 해주었다는데도 그녀는 내게 전화해 미심쩍다며 추궁을 해댔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써 놓은 시나리오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내가 그것을 인정할 때까지 몰아붙일 기세였다.

그런 식의 추궁으로 1년을 시달린 나는 그만 이 말에 폭발해버렸다. "그럼,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죠."  경찰에 신고해 어떻게 된 일인지 밝히고 내가 그 일과 관련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내게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다. 


그 말에 그녀는 노발대발했다. 

어떻게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경찰을 운운할 수 있냐며, 나더러 삼자대면을 하자고 한다.

삼자대면이 누구냐고 하니, 자기와 자신의 남편 그리고 교장선생님이란다.


그날 저녁에 곧바로 두 부부가 교장실로 날아들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내 아이는 홀로 유치원 원장실에 맡겨졌다.

교장실에서 만난 그녀는 내게 눈길도 안 마주치더니 자신이 아주 상처 받았단다.

교사의 입에서 어떻게 학부모를 경찰에 신고한다고 할 수 있느냐면서. 

같이 온 남편은 내게, 직장에서 자신도 민원을 받는 입장에 있다고 하면서 민원을 받다 보면 말도 안 되는 민원도 있지만, 말도 안 된다고 해서 받는 사람이 그렇게 똑같이 되받아치면 되겠냐면서 선생님이 "경찰"이라는 말만 안 꺼냈어도 교장실까지는 안 왔을 거란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 교육에 힘을 합해야 할 교사와 학부모가 이렇게 대립하면 되겠냐면서 서로 사과하라고 화해를 권하셨고 나는 감정이 섞여 말이 지나쳤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자 그녀, 

"저는 사과, 못해요! 너무 상처가 커요!"

결국 이렇게, 민원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말도 안 되는 말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훈계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씁쓸했다. 이렇게 교권은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인가.

교사는 무조건적으로 참아야만 하는 건가.

왜 교사는 학부모의 그 더러운 오물을 다 받아내야만 하는 건가.




쓴 소주를 삼켰다. 

직장 생활하다 보면 별 일이 다 있는 거라고.

나도 한낱 직장인일 뿐이라고. 

요즘 교사가 뭐 그리 존경받는 시대인가, 어딜 가도 흔해 빠진 선생님이니 뭐 그리 특별한 사이도 아니고.

1년 동안 아이와 함께 지낼 담임선생님께 예의라도 갖춰주면 다행인 시대이지..

그렇게 현실을 탓하고 나를 위로하면서 소주 한잔에 그 일도 목구멍으로 삼켰다.


그런데 그게 넘어가지 않고 목구멍에서 막힌 모양이다. 자꾸만 헛구역질이 올라왔고 캑캑거렸다.

집에 와서 내 아이와 있는데도 갑작스럽게 그 일이 떠올라 분노가 치밀었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하고 느낄 만큼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머리는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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