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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쌤 Oct 23. 2021

글 쓰는 선생님이 되었습니다(2)

<나는 대한민국 평범한 교사입니다.> 

끝내야겠다. 20년이나 했으면 끈기도 없고 인내심도 없는 내가 많이 한 거다. 이 티도 안나는 선생 짓, 그만둬야겠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질질 끌려다니듯이 학교에 오는 거, 이제 정말 지친다. 그렇게 아무 미련 없이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고 싶었다. 

그런데 나이 들면 직장을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더니 이 짓으로 입에 풀칠하고 살았기에 내 마음대로 그만둘 수조차 없었다. 내 앞에는 집 사느라 풀로 받은 대출금과 아직 유치원인 딸아이가 자라고 있었으므로. 생계형 교사인 나는 버텨야 했다. 


 몸은 학교에 있으나 정신은 바깥에 둔 채, 그렇게 버티기 시작했다. 생계가 해결된다면 언제든 사표를 던지리라, 생각하면서 나를 해방시켜 줄 그 어딘가에 있을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찾은 것이 우습게도 <새벽 글쓰기> 모임이다. 겨우 찾은 것이 '글쓰기'라니 기가 막히지만 무언가 모질라고 어리숙한 나 다운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사실 내가 원했던 건 '새벽'이었다. 무언가 인생의 변화를 꾀하는 사람들은 새벽형 인간이었고 하루 중 중요한 일은 새벽에 제일 먼저 처리한다고 했다. 나도 인생의 거대한 변화를 꾀하고 싶었으므로 나와 다른 종의 부류일 거라 여겼던 '새벽형 인간'이 돼 보고자 했던 거다. 

그렇게 '새벽'을 탐했으나 내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겨우 일어나 책을 읽다가도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고 쓸데없이 검색하다가 아침을 맞고는 그냥 잠이나 푹 잘걸.. 하는 자책이 이어졌다. '새벽'에 일어나 무언가를 함께 하는 모임이 필요했고 그때의 내게 운명처럼 <새벽 글쓰기 모임>이 찾아왔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떻게 쓰는지, 무엇을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썼다. 새벽마다 배달되는 글감에 후다닥 글을 써내고 출근하면 아침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큰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함도 있었지만 사실, 학교와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쾌감. 그것이 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나에게 해방감을 느끼게 해 주었던 글쓰기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나를 학교 안으로 밀어 넣었다. 글을 쓴다는 건 얼마큼이고 간에 자신을 드러내야만 하는 일이고 내가 아무리 아닌척한다고 해도 내 몸과 말투에는 이미 '선생'티가 배어있었으니 그걸 빼놓고는 나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내 일상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해서, 옆반 선생님에 대해서, 공문 쓰느라 수업은 뒷전인 내 삶에 대해서... 쓰다 보니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긋지긋했던 것들에 대해 묘한 애정이 생겼다.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서서히 설명이 되었고 지루했던 일상은 생각할 것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글쓰기를 배우는 길에는 많은 진리가 담겨있다. 실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충실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글을 쓴다는 건 단순히 문자를 나열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가 글짓기가 되어서는 안 되고 교사가 아이의 글을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도 내가 직접 글을 쓰면서 진실로 이해가 되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잘 쓰기 위해서는 진실로 살아야 한다. 글쓰기는 곧 삶이기 때문이다. 


 인생이 남긴 쓰레기 더미는 자꾸 쌓여 간다. 우리는 그 안에서 특정한 경험들만을 수집하기도 하고, 때로는 버린 것들을 섞어서 새로운 경험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가 버린 달걀 껍데기, 시금치 이파리, 원두커피 찌꺼기 그리고 낡은 마음의 힘줄들이 삭아 뜨거운 열량을 가진 비옥한 토양으로 변한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 쓰는 일을 고무래로 흙을 파내듯 자신의 마음을 자꾸 써레질해주고, 얕은 개울 같은 생각을 자꾸 뒤집어 주는 것이라 했다. 이렇게 쓰레기가 가득 찬 내 일상을 자꾸만 뒤집고 또 뒤집어서 쓸데없는 찌꺼기들을 걸러내야만 기름진 토양이 만들어지고 내 안에 풍요의 정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글 쓰는 선생님. 

나는 아이들이 너절하게 늘어놓고 간 교실 속 쓰레기들을 줍기로 했다. 하나씩 들춰내며 그 속에 두고 간 아이의 마음을 살피고 아직 덜 자란 내 안의 아이도 키워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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