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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쌤 Oct 26. 2021

관계는 선생님도 어렵단다

<교실 속 이야기 줍는 선생님>

혜선(가명)이가 나쁜 말을 했다. 친구에게 절교하자고 했단다.

그 말을 들은 은채(가명)는 무슨 뜻인지 몰라 알았다고 했고,

그 반응이 약 올라 혜선이가 은채를 노려봤단다.

은채는 혜선이가 좋은데 무섭다고 했다. 

혜선이에게 왜 은채에게 그런 말을 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서율(가명)이랑 놀고 싶은데 은채가 자꾸만 자기를 따라와 화가 났단다.

지금은 은채가 따라다니지 않아 좋다고도 했다.

혜선이의 차가운 태도에 순간 아찔하기도 했지만

맞벌이 부모님 때문에 어릴 적부터 늘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데리고 다녀야 했던 혜선이를 생각하면

또 그 맘을 전혀 모르겠는 건 아니다. 

어른인 나조차도 내 딸인 짱가양이 무거울 때가 있는데, 

이 어린아이에게 늘 챙겨줘야 하는 동생의 존재가 가벼웠을 리 없다.

교실 안에서는 혼자서 자유롭고 싶은데 또 동생 같은 은채가 따라다니니 짜증스러울 만도 하다.


혜선이에게 너의 마음은 선생님도 알겠지만 그렇게 말하면 은채가 너무 속상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반대로 혜선이한테 누가 절교하자고 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하고 물었더니 

혜선이 눈에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 해진다. 영민한 혜선이는 다음날 은채에게 사과를 하겠다고 했다.

돌려서 말할 줄 모르는 혜선이. 

이 아이에게 그럴 때는 은채에게 "다음번에 같이 놀자."라고 말하면 된다고 알려주면서 하나의 중요한 진실을 깨닫는다. 내 솔직함과 진실이 언제나 중요한 것은 아니다. 때론 그것이 상대에게 칼날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내 솔직함을 무기로 하여 다른 이의 마음에 몇 번이나 칼날을 들이댔을까...

혜선이와 은채를 따로 불러 지도하면서,

은채에게 너무 좋아서 다가가도 친구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혜선이가 은채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매일매일 모든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알려주었다.

은채가 그 말을 이해했을까? 눈을 끔뻑끔뻑 뜨며 말갛게 쳐다보는 것이 모르는 눈치였다.

"혜선이는 서율이랑 둘이서만 노는 시간도 필요하대. 그럴 때는 은채가 안 와줬으면 좋겠나 봐. 혜선이가 다음에 놀자~ 하고 말하면 은채, 다른 친구랑 놀 수 있어?" 하고 물었더니,

그제야 와닿는가 보다. 그 말이 너무 속상했는지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큰 소리로 엉엉 울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한다. 



순하고 아기 같은 은채. 

은채에겐 너무 속상한 일이지만 관계가 그렇다.

어느 누구의 일방적인 마음만으로는 관계가 이어지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상대가 어떤 정도의 거리를 원하는지, 아니 어떤 사람에게는 상대마다 다른 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내가 나의 남자 친구 이야기, 가족 이야기, 힘든 고민을 털어놓아도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나에게 하지 않는 친구에게 "왜 너는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안 해?" 하고 물었다가 "나도 친한 친구에게는 말해." 하는 답을 듣고는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엉엉 큰 소리를 내며 우는 은채의 마음에 빨간약이라도 발라주고 싶다. 

아직 어린 은채에게 좀 더 돌려 말했어야 했었나 후회가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앞으로 학교라는 사회생활을 통해 은채도 단단해져야 할 테니. 엉엉 큰소리를 내며 울면서 이 아이도 한 뼘 성장하리라 믿는다.


1학년 아이들의 관계 속에서 나를 본다.

미숙하기만 했던 젊은 날의 내가 보이고,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고자 여전히 날이 서 있는 나도 보인다.

아이들을 지도하고자 내가 뱉은 말은 사실, 내가 주워 담아야 하는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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