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의 추억
1993년 8월, 제대하고 바로 데이콤에 입사했다.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 중의 하나였다. 운이 좋았는지 입사시험 없이 장교 특채로 들어갔다. 공군 50여 명, 육군 50여 명, 해군 몇 명이 함께 입사했고, 신입사원 연수를 함께 받게 된다.
연수를 받는 동안 자연스럽게 공군 출신은 공군끼리, 육군 출신은 육군끼리 모이게 된다. 함께 훈련을 받았던 동기들이었으니. 92년 3월부터 데이콤은 002라는 번호로 국제전화 서비스를 시작한 터라 동기들 대부분은 국제전화 사업부로 가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난 연수받는 동안 천리안을 이야기했다. 군 복무 시절부터 천리안을 쓰기 시작했고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서비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기들 대부분은 천리안이라는 것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전산 전공자들 아니면 PC를 만져 본 적도 없을 시절이었으니, PC 통신이라는 걸 알 리가 없지. 그런 동기들에게 천리안으로 뉴스도 보고, 애인하고 채팅도 하고, 음악도 만들어 동호회에서 공유하는 이야기들은 신기하기만 한 이야기였다.
당시 천리안을 운영하던 부가통신사업본부에는 입사동기 16명이 배정되었다. 100명이 조금 넘는 인원 중에 16명이라니,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었다. 내가 떠들고 다닌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군 출신이 10명, 육군과 해군 출신이 6명이었다.
부서를 배정받고 겪기 시작한 부가통신사업본부는 애초에 기대했던 활기차고 신바람 나는 첨단 서비스를 만드는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의욕 없는 눈빛들, 권위적인 분위기, 음침한 사무실 공기...
회사의 돈줄인 전용회선 사업부,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의욕적으로 시작한 국제전화 사업부와는 달리, 부가통신 사업부는 인지도도 없고, 매출도 형편없는 애물단지 부서였다. 진급도 늦고, 인원 충원도 안되어 다들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 장교 출신 신입 사원이 대규모로 배정된 것도 어쩌면 껄끄러운 신입사원을 기피했던 탓이 아닐까 싶을 정도.
보름쯤 지나 OJT가 끝나갈 무렵 누군가가 조용히 나를 찾아왔다. 85학번 선배였다. 서울대 상대 출신들끼리 신입생 환영회를 마련했단다. 환영회 자리에서 만난 인사부서 선배는 대뜸 나를 괴짜 취급했다.
"1, 2, 3 지망을 죄다 부가통신으로 쓴 건 네가 처음이야." 그러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네가 원하면 지금이라도 국제전화나 전략 부서로 옮겨줄 테니 이야기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