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무서워지기는 처음이야
95년 7월 1일, 천리안 매직콜이 출시된다. 천리안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처음 보는 규모로 온갖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했고, 개발팀은 두 달 정도 밤낮없이 일을 했다.
전날까지 밤을 꼬박 새운 개발자들은 당일 전원 휴가를 가고, 개발팀 신참인 나와 B만 남아 문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사전에 고객지원 부서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기는 했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문의 전화를 커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0시가 넘어가면서 개발팀의 모든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미리 예상되는 질문들을 뽑아 준비를 하기는 했지만 걸려오는 문의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설치 방법이나 모뎀 세팅 같은 문의는 양반.
기억나는 제일 황당한 사례...
"매직콜이라는 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 전화는 있는데?"
"모뎀 하고는 연결이 되어 있나요?"
"모뎀이 뭐죠?"
"컴퓨터 뒤에 보면 전화선 꽂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요. 그게 모뎀이에요."
"컴퓨터가 있어야 해요? 컴퓨터 없는데..."
"그래요? 그럼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안내를 해야지, 전화 안 걸려서 30분을 씨름했구먼. 시간 낭비한 거 어떻게 물어낼 거예요?"
모뎀이 없거나, 윈도가 깔려 있지 않거나, 깔려 있어도 윈도 3.x 버전이거나(매직콜은 윈도 95가 필요했다). 아예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반이 넘었던 듯하다.
하루 종일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손가락만 까딱해서 전화기 훅을 누르면 바로 전화가 걸려 왔으니. 퇴근시간이 지나서야 지옥은 끝났지만 잠들기 전까지 귀가 먹먹했고, 목은 쉬어 버렸다. B도 마찬가지였고.
마케팅은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매직콜 프로그램은 한동안 안정성 문제로 시달려야 했다. 급하게 업데이트 패치를 내놓은 일주일 동안 나와 B는 전화 지옥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낮에는 전화받고, 야근하면서 버그 리포트 작성하고… 프로그램 만들어 보겠다고 개발팀에 왔는데 세 달 동안 포토샵만 붙들고 있더니, 이젠 고객 지원으로 하루가 간다. 사는 게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