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타치는 사진가 Jun 27. 2022

세대를 잇는 시간의 다리

국립 민속박물관 파주

타임머신이 있다면...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리고 우리 동네 아이들끼리 타임머신을 타고 10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아마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거다. 커다란 돌덩어리 위에 옷을 놓고 방망이로 두드리는 할머니가 무엇을 하시는 건지, 방구석에 놓여 있는 수박만 한 항아리는 무엇인지, 둥그런 돌덩어리는 왜 부엌 한편에 포개져 있는지, 할아버지는 검은 돌덩어리에 왜 물을 따르고 시커먼 막대기로 문지르고 계실까? 어른들에게는 익숙한 추억의 모습들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물건들과 행동으로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눈치챌 겨를도 없이 어느새 우리는 훌쩍 다른 세상으로 넘어왔다.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헤이리 마을, 자유로를 빠져나와 성동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헤이리 마을이다. 마을 가기 전 좌회전하면 바로 오른편에 검은색의 세련된 건물이 들어섰다. ‘국립 민속박물관 파주’라는 간판과 함께.


국립 민속박물관 파주(앞으로 파주관으로 줄임)는 경기도 북부지역 첫 국립박물관으로 2021년 7월 경 경기도 탄현면 헤이리 마을 바로 앞에 개관했다.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달리 국립 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민속유물과 아카이브 자료들을 보관하고 처리하기 위한 수장고 시설이다. 총 15개의 수장고에 약 90만 건의 소장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보관하고 있으며 이중 7개의 수장고를 개방형으로 꾸며 관람객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보관되어 있는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개방형 수장고 옆으로 보이는 수장고가 마련되어 있어 유리창을 통해 수장고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보이는 수장고도 마련되어 있으며 어린이를 위한 체험관과 각종 민속 자료들을 다양한 형태로 검색하고 찾아볼 수 있는 아카이브 센터도 마련되어 있다. 


구경하러 갑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현관으로 들어서면 로비 건너편 2층으로 높이 솟아 올라 있는 수장고의 모습에 놀란다. 깔끔하게 유리로 벽을 세우고 촘촘하게 마련된 정사각형 장식장에 수납되어 있는 유물들의 모습을 보면 여느 박물관과는 사뭇 다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내를 따라 열린 수장고 내부로 들어가 본다. 도서관 서가처럼 질서 정연하게 유물들이 정리되어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면 섣불리 아는 척하지 마시길. 유물에는 각각의 고유 번호가 붙어 있어 수장고 한 켠의 키오스크 검색대를 통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괜히 흐린 기억을 뒤적거려 설명하려 들다가 망신당하는 수가 있다. 설명은 기억보다는 기록에 맡기자.


아이들은 들어 본 적도 없는 다듬잇돌 두드리는 소리, 추운 겨울밤 화장실을 대신했던 방구석 요강 이야기, 맷돌을 돌려 콩을 갈아 콩국수 만들어 먹던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면 수장고는 아기자기한 타임머신으로 변해간다. 그러다 낯익은 중국집 엽차 잔, OB 베어스와 호돌이 잔, 예전에는 집집마다 가지고 있던 식기 세트 등을 만나게 되면 나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 말을 멈추게 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만 타임머신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짜장면을 사주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떠오르고, 가지런히 반찬을 담아 상을 차려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무심한 듯 별다른 설명 없이 번호만 달고 있는 유물들이지만 고관대작이나 궁궐에서 사용하던 보물들이 아닌, 일상생활 속의 민속 유물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수장품들이 놓여 있는 흰색 바닥으로 이내 기억 속 우리 집 식탁이 겹쳐지고 그 위에서 가족들이 모여 지냈던 시간이 펼쳐진다. 화려한 조명과 장황한 설명이 어쩌면 추억과 회상을 가로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열린 수장고가 다가 아니야

1층부터 수장고를 둘러보다 보면 2층 아카이브 전시실로 이어진다. 아이들을 위한 홀로그램도 마련되어 있고, 소리와 영상자료를 둘러볼 수도 있다. 이런 것까지 민속자료가 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세세한 삶의 모습이 정리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교하의 일상도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는 잊혀진 민속으로 기록되고 저장되겠지. 잠시 앉아 생각해 본다. 

파주관의 백미는 영상실이다. 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전체 유물들이 가로 6미터, 세로 2미터의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있다. 손바닥만 한 이미지를 클릭하면 자세한 내용이 펼쳐지고 여러 장의 사진으로 돌려 볼 수도 있다. 또다시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타임머신 앞에서 아이고 어른이고 구분 없이 넋을 잃게 된다. 학교 다닐 땐 그리도 꼴 보기 싫던 교과서 표지들이 왜 이리도 정겨운 것인지… 디자인을 전공하고 책 디자인을 하고 있는 딸아이는 아이디어 보물상자라며 종종 이곳을 찾아야겠단다. 

취재를 위해 양해를 얻고 어린이 체험관을 찾았다.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는 놀이를 겸한 전시시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것저것 만져 보다 야단맞았다. 방역 규정에 따라 비닐장갑을 끼고 만져야 한단다. 어린이 체험관에서 철없는 어른이 사고를 쳤다. 미끄럼틀도 타고 싶었지만 차마…


이제 여러분 차례

‘수장고’라는 단어를 들으며 솔직히 ‘별 거 있겠어?’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전시품들은 모두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50대 중반의 아저씨를 방학 때면 포천의 할머니 댁에서 보름씩 머물던 초등학생으로 되돌려 놓았다. 어른의 추억과 아이들의 호기심이 만나면서 수장고는 커다란 타임머신이고 시간을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파주관을 찾을 계획이라면 생각보다 넉넉하게 시간을 챙기시길 바란다. 

파주 수장고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입장료는 없다. 예약은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일반 수장고 관람 예약과 어린이 체험실 예약이 구분되어 있으니 어린이를 데리고 가려면 어린이 체험실까지 예약하시길. 자세한 내용은 파주 수장고 안내 페이지를 확인하기 바란다. 


* 이 글은 디어 교하 22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통영에 가면 그의 음악이 들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