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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Aug 02. 2023

라벨로 읽는 막걸리 이야기

막걸리도 제 값을 받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


우선 모든 술은 효모가 당분을 발효해서 만들어집니다. 포도 같은 과일은 자체적으로 당분이 많으니 효모만 넣으면 발효가 되어 술이 만들어집니다. 쌀과 보리 같은 전분질 원료는 먼저 전분을 당분으로 당화 시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침 속에 있는 아밀레이즈를 사용하여 당화 시키기도 했지요. '너의 이름은'에도 술독에 쌀을 넣고 어린 소녀가 침을 뱉는 장면이 나오지요. 


 맥주는 싹 틔운 보리(몰트)가 자체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전분분해효소를 사용합니다. 우리도 식혜 삭힐 때 엿기름이라고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겁니다. 몰트에 물을 붓고 끓여 식혜물 비슷한 달달한 물을 만든 후 효모를 부어 발효를 시킵니다. 동양권에서는 누룩을 빚어 당분분해 효소를 다량 포함하고 있는 곰팡이와 효모를 동시에 배양해서 사용합니다. 고두밥과 누룩을 섞으면 누룩곰팡이가 당화를 시킨 당분을 옆에 있던 효모가 날름 알코올로 분해를 시키는 겁니다. 요약하면 맥주 등 서양에서는 당화와 발효를 나눠서 하는 반면 동양에서는 당화와 발효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과 일본, 술의 갈림길


조선의 경우 집집마다 김치와 나란히 술을 빚어 왔던 반면 일본은 지주들이 농번기 인력 활용과 수익 창출을 위해 대규모 양조장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찌감치 주류산업이 태동하였고 지역 번주들의 주요한 세수원이 되었죠. 그러다 보니 생산성과 품질 유지가 중요해졌고, 일찌감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당화와 발효를 분리시키는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누룩에서 곰팡이와 효모를 분리하는 데 성공하고, 가장 쓸만한 곰팡이 균주와 효모를 따로 배양하여 술 빚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지요.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일본은 조선의 가양주 문화를 말살하기 시작합니다. 일본 정부에게 술은 아주 짭짤한 세수원이었던 반면 조선은 집집마다 술을 빚으니 세금을 걷을 방법이 없던 탓이지요. 몇 단계를 거쳐 집에서 빚던 술은 사라지고 지역마다 양조장이 들어서기 시작하죠. 조선에 새로 생기는 양조장은 누가 운영했겠어요? 당연히 일본인들이겠죠. 어떤 방식으로? 이 또한 당연히 일본식으로. 


 (입)국(麴)과 효모, 그리고 누룩


 일단 라벨에 적혀 있는 재료에 (입)국(麴)과 효모가 적혀 있다면 일제 강점기 이후 도입된 근대적인 양조법(일본식이라 적고 싶으나 이 단어에 반감을 갖고 계신 분들이 좀 계셔서)을 사용한 막걸리입니다. 찐 쌀에 곰팡이 균주를 뿌려서 쌀 알갱이 속에 흡수시킨 걸 '(입)국'이라고 합니다. 당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여기에 효모를 투입해서 발효를 끝냅니다. 국과 효모는 늘 같이 따라다닙니다. 하나만 가지고는 술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입국과 효모 없이 누룩만 적혀 있다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빚은 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완전히 할머니 방식대로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누룩을 만들 때 특정 곰팡이나 효모균을 접종하기도 하니까요. 어쨌든 쌀과 누룩을 잘 섞어서 한 번에 빚어냅니다. 쉬울 것 같죠? 아닙니다. 


뭐가 달라?


입국과 효모를 분리하여 사용하는 경우 특정 곰팡이와 효모만을 골라 투입하기 때문에 늘 일정한 술맛을 낼 수 있습니다. 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술 만들기도 비교적 쉽습니다. 근데 맛이 단조로울 수 있습니다.  감미료에 대한 유혹이 커질 수 있습니다. 반면 누룩의 경우 아무리 골라서 접종을 한다고 해도 자연적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다른 균들을 막지 못합니다. 한데 이런 놈들이 다양한 맛과 향을 만들어 냅니다. 계절에 따라 비집고 들어가는 놈들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가 무지무지 어렵습니다. 어떤 균들이 활동하느냐에 따라 술의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수시로 수치들을 측정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어떤 방식을 취하느냐는 양조장의 정책일 뿐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안정적인 술을 낼 것이냐,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좀 더 풍부하고 깊은 맛을 낼 것이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다만 누룩으로만 만든 술은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유통기한 아래 몇 번째 배치인지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배치가 마음에 안 들었다면 다음 배치를 기다려 주시라'는 의미지요. 와인도 해마다 달라지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잖아요. 물론 맛의 근본은 유지할 테지만 미묘하게 느껴지는 향이나 끝맛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국내 쌀, 수입 쌀, 팽화미


막걸리의 가격은 3-4천 원부터 10만 원이 훌쩍 넘을 정도로 천차만별입니다. 대부분 원료가 되는 쌀 가격과 도수에 따라 정해집니다. 저렴한 막걸리는 거의 모두 나라미(예전엔 정부미라고 불렀죠), 수입쌀, 팽화미(뻥튀기한 쌀) 등을 원료로 씁니다. Kg당으로 보면 국내산 나라미는 2,200~2500원, 수입 쌀은 1,500원 정도, 팽화미는 수입쌀은 700원대, 국내산 쌀은 1,500원 정도입니다(20~40Kg 단위 가격이니 대량으로 구입하면 훨씬 저렴해질 겁니다). 반면 지역이 명시된 쌀은 2000원 후반대일 겁니다. 물론 자체 생산하거나 대량 구매에 따른 혜택은 있을 수 있겠죠. 


 그럼 쌀이 다르면 술맛도 다른가? 당연합니다. 쌀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술맛도 달라집니다. 고두밥, 범벅, 백설기, 구멍떡... 갈수록 만들기 힘들어집니다. 맛이 다르지 않다면 굳이 힘들게 만들 이유가 없겠죠. 아무튼 저가 막걸리들은 저렴한 재료에 최소한의 가공으로 생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입국과 수입산 팽화미에 효모를 사용한 술이 가장 저렴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만들고 나면 감미료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감미료, 첨가물의 유혹


 선별된 곰팡이(입국)와 효모를 사용하면서 태생적으로 단조로운 맛인 데다가 저렴한 재료를 쓰면서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미료를 빼면 팔리는 술을 만들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또 하나,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막걸리는 10도 아래로 희석하게 되면 원주의 맛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마지노선은 8도였습니다. 일반적인 6도까지 희석시킨다면 정말 싱거워지더군요. 감미료 없이는 판매할 수 없는 술이 되겠더라고요. 감미료 없이 만들어지는 막걸리의 도수가 높은 이유는 대부분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국내에서 판매되는 막걸리에는 유통기한을 늘리는데 필요한 첨가물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단지 맛을 보완하기 위한 감미료만 첨가물로 들어갑니다. 와인에 사용되는 이산화황을 막걸리에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들어가는 감미료 역시 화학적으로 생성한 것이 아니라 자연 재료들을 발효처리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먹어도 전혀 문제가 없단 이야기죠. 아스파탐이 발암물질이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1급 발암물질인 술을 마시면서 발암가능물질을 걱정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아닌 듯해요. 


 술은 지갑과 입맛으로 고릅시다 


 생각보다 훨씬 길어져 버렸는데... 막걸리는 결코 싼 술이 아닙니다. 그동안 싸게만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싼 술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겠지만. 장수막걸리만 드셨던 분은 처음에는 조금 부담감이 들더라도 누룩으로만 빚은 막걸리를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대략 1만 원 근처에서 구입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삼씨오화나 백곰막걸리, 산울림 1993, 대학로 두두 같은 전통주 전문점을 찾아보시는 것도 적극 추천합니다. '막걸리가 뭐 이리 비싸?'란 생각은 잠시 접고, 뭘 고를지 모르시겠다면 직원에게 물어보세요. 대부분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친구들입니다. 안주와 취향에 맞는 막걸리를 권해 드릴 겁니다. 


 무감미료 막걸리를 만드는 사람들의 가장 큰 장벽은 '막걸리는 싼 술'이라는 인식입니다. 비싼 술은 비싼 값을 합니다. 좋은 막걸리를 구하셨다면 좋은 음식과 함께 즐겨 보시길 바랍니다. 새로운 막걸리의 세계에 발을 들이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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