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재잡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타치는 사진가 Jan 18. 2024

심악산은 어디로 갔을까?

심악산이 심학산이 된 사연


“카와나메군, 자네 교하라는 지역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땅의 기운이 대일본제국에 위협적이라는 풍수연구관의 지적에 따라 파주에 통합시켜 버린 지역이지요.”

“그 동네 후속 작업이 필요한 모양이야. 만세 난동(3.1운동)이 극렬했던 지역을 대상으로 기운을 떨어뜨리는 작업을 진행하라는 상부지시일세. 이미 토목관리부에서는 쇠말뚝을 잔뜩 챙겨 출발했다네. 자네는 우선 심악산의 기운을 잠재울 방안을 찾아보게나.”

 “알겠습니다, 부장님. 바로 조사에 착수하겠습니다.”


카와나메는 심악이라는 산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고려 시대의 지도부터 심악산이라는 지명이 나온다. 문헌을 살펴보니 조선의 여러 문인이 명산으로 칭송하고 있다. 교하지역이 워낙 평지인지라 높지는 않지만, 우뚝 솟아 있는 산세가 쉽사리 부각되었으리라. 그뿐 아니라 한강에서 유람하는 심악산에 대한 평가를 보니 가히 절경이라 평가하고 있다. 카와나메는 의문이 생겼다. ‘200미터도 안 되는 야산이나 다름없는 산이 어찌 이런 평가를 받는 거지? 답사를 다녀와야겠군.’ 


한강을 끼고 있는 심악산의 위치 덕분에 발품을 팔지 않아 다행이다. 카와나메는 마포 나루에서 나룻배를 징발하여 한강 하구로 향했다. 서해로 향하는 한강의 물살에 몸을 맡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심악진에 닿았다. 마침 밀물이 들어와 뻘밭을 걷지 않아도 되는 것 역시 다행이다. ‘오늘은 운이 좋군.’ 나루터뒤 마을을 지나 산자락을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주민으로 보이는 몇몇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 마침 무리에 섞여 있는 순사가 눈에 띈다. 다행히 일본인이다.


 “어이, 순사양반, 무슨 일이 있는 거요? 아참, 난총독부학무국 소속 학예관 카와나메라고 하오.”

“예, 나으리. 어젯밤부터 산이 울려 잠을 설쳤다고, 뭔 일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저리 난립니다요.” 

“산이 울린다고?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일본처럼 화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진도 없는 땅에서... 역시 조선인은 미개하단 말이야.”

“어이쿠, 아닙니다요, 나으리. 저 산은 영험한 산이라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종종 땅이 울린답니다. 저 사람들 표정 보십시오. 게다가 조선인들은 이곳을 천자지지(天子之地)라고, 천자가 나올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 중심에 저 심악산이 있는 것이고요.” 


잠깐 순사와 이야기를 나눈 카와나메의 뇌리에는 ‘천자지지’라는 단어가 계속 맴돈다. 조선이 대일본제국으로 병합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이런 말이 돌고 있단 말인가. 산이 울리거나 말거나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심악이라는 이름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카와나메는 총독부로 돌아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본다. 마침 충청도에서 월악산(月岳山)을 월락산(月樂山)으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 중임을 찾아낸다. ‘달이 즐기는 뒷동산’이라는 뜻으로 지명의 의미를 격하시키는 작업의 일환이다.


총독부에서 이미 무라야마 박사에게 위탁한 연구 결과가 있다. 조선인들은 풍수신앙에 심취해 있으며, 조선인들의 기운을 꺾기 위해서는 풍수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지명을 뜯어고쳐 의미를 흐트러뜨리고, 의미가 없거나 아주 가벼운 의미로 개명하는 작업이 그 시작이라는 것. 카와나메 역시 이 연구 결과를 알고 있었고, 심악산이라는 이름을 무엇으로 바꿀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마땅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군. 심악산은 배로 가면 금방이니 답사 핑계 대고 바람이나 쐬고 와야겠군.’ 심악진에 다다른 카와나메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야트막한 산자락 나무 위에 무리 지어 앉아 있는 한 무리의 학이었다. ‘거참 멋지군...’ 생각하며 산을 오르던 카와나메는 일전에 만났던 순사와 마을 사람 무리를 다시 만난다.


“어이 순사 양반, 조선에서는 저 새를 뭐라고 부르나?”

“어찌 여기를 또 오셨습니까? 어떤 새요? 아~ 쯔루 말씀이십니까? 조선 사람들은 학이라고 부릅지요.”


카와나메는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그거다. 심악의 악자를 학으로 바꾸면 되겠군. 역시 답사 오기를 잘했네.’ 


“그나저나 저 사람들은 왜 또 모여있는 것인가? 아직도 산이 울리고 있다는가?”

“그 문제는 해결됐습니다요. 강 건너 김포사람이 몰래 와서 묘를 썼답니다. 며칠 걸려 산을 온통 뒤져 묘를 찾고 당사자를 찾아다녔습죠. 며칠 전 묘를 파고 시신을 김포로 거두어갔습지요. 오늘은 미안하다며 산신령에게 제사를 올리고 내려오는 길입니다요.” 

“그러고 나니 산이 울지 않던가?”

“희한하게도 묘를 판 날 바로 울리기를 멈추더라고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요.”


‘거참, 별일이네...’ 카와나메는 생각하며 돌아와 보고서를 작성한다.


교하 지역의 심악산은 조선이래 ‘천자지지’의 명산으로 추앙받던 산인지라 의미를 격하하기 위한 개명작업이 시급함. 따라서 본 연구관은 ‘심악(深岳)’이라는 명칭을 ‘학을 찾는다’는 의미인 ‘심학(尋鶴)’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함. 답사 결과 심악 주변으로 학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명칭 변경에 대한 의혹을 최소화할 수 있음. 또한 조선 궁궐과 관련한 이야기를 적절히 덧붙일 경우 역사적인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을 듯하니 학무국 편집과의 후속조치가 필요함.


 본 내용은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에서 2021년에 발간한 문화역사지리에 상명 대학교 정우진 교수가 기고한 [한강하구 ‘심악(深岳)’ 문화지형의 형성과 해체] 논문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픽션임을 밝힙니다. 위의 논문에 따르면 조선시대까지 심학산은 심악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20년대 이후 심학 산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습니다. 논문의 저자는 일제의 풍수침략의 일환으로 심악산이라는 명칭 대신 심학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글은 마을잡지 [디어교하] 2023년 겨울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문이 편지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