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미디어에 대한 단상
"이젠 신문을 우편함에 놓고 가더라구. 신문이 편지두 아니구..."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앞집 어르신이 투덜거리신다. 앞 집은 조선일보, 우리 집은 한겨레, 어쩌다 조선일보 헤드라인을 보면서 '저 놈들 망해야 하는데...' 욕을 하며 지나치던 나와 마찬가지로 앞집 어르신도 한겨레 신문 머리기사를 보면서 혀를 차셨지 싶은데...
이미 신문사 별로 배달하던 시기는 진즉에 끝나서 지금은 보급센터 한 곳에서 모든 신문을 같이 배달한다. 이제 새벽이면 현관 앞에 놓여 있는 게 당연했던 시절마저 끝난 모양이다.
우편함으로 신문이 배달되다 보니 밤 12시쯤 보면 어느 집이 어떤 신문을 보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12층이니 24가구 중 신문을 보는 집은 딱 세 집이다. 조선, 동아, 한겨레 한 부씩. 그나마 우리 집 한겨레는 내가 끊은 것을 큰 딸아이가 다시 신청해서 보게 된 것. 이 녀석의 자취 생활이 길어지면 다시 취소할 생각이니 24집 중에 2집만 신문을 볼 날이 멀지 않았다.
막내를 데려다 주기 위해 6시 20분쯤 집을 나서면서 우편함을 보면 앞 집의 조선일보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새벽잠 없으신 어르신께서 일찌감치 챙겨가시는 모양이다.
두어 주 전 강남에서 한 잔 하고 12시 넘어 집에 들어오다 보니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무심코 둘 다 뽑아 집에 들어오는 길에 앞 집 현관 앞에 놓고 들어왔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조선일보 헤드라인 역시 곱게 보아 넘기기는 힘들었지 싶다.
그다음 날, 막내와 함께 아침에 현관을 나와보니 한겨레가 현관 앞에 놓여 있었다. 앞 집 어르신이 가져다 주신 게다. 조선과 한겨레의 간극을 이웃의 정으로 극복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매일 아침 우리 집 현관에는 한겨레 신문이 놓여 있다. 어쩌다 늦게 귀가할 때면 내가 챙길 때도 있지만, 횟수로 따지면 열 번에 한 번쯤 될까?
다가올 대선에서 앞 집 어르신이 이재명을 찍으실 것 같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1층에서 7층까지 신문을 가지고 올라오시면서 궁금해서라도 한겨레를 들추실지도 모르니 한겨레를 취소하는 건 조금 미룰까 싶기도 하다. 한겨레라고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조선일보와는 다른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알려드릴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