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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재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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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Nov 26. 2021

시장경제의 실험실-신림동 만화 골목

50대 중반 아제의 라테 이야기

고3 시절, 참기 힘든 유혹 중의 하나는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친구 녀석들은 매일 외인구단 이야기를 했고, 나는 '대학 들어가면 꼭 해야 할 일' 1번으로 공포의 외인구단을 적어 놓았었다.


다행히 무사히 대학에 들어간 후 신림동 만화 골목을 알게 되었다. 한 골목에 예닐곱 개의 만화가게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곳. 당시 가게에서 보는 것은 권당 50원, 대여할 경우 100원이었다. 아마도 전국 공통의 표준 요금이었을 게다.


4월쯤 되었을까? 어느 날 만화 골목 한 집에서 '100원에 3권'을 내걸었다. 다들 고만고만한 가게들이니 당연히 이 집으로 들어갈 밖에. 자유경쟁시장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1차 전은 당연하게도 100원에 4권, 5권을 거쳐 일주일 만에 100원에 10권으로 하향 평준화되었다. 한 권 보는데 느긋하게 봐도 10분 남짓인데 10권을 본들 한 시간 반 정도, 이 정도면 공부(를 해야 하나 고민)에 시달리던 정신을 추스르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이 시간이 단돈 100원이라니...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보이던 경쟁은 이내 서비스 경쟁으로 이어졌다. 2차 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300원 받던 라면을 무료로 주는 집, 토스트를 정성스레 구워 주는 집, 김밥 한 줄을 말아주는 집, 심지어 끝판에는 햄버거와 콜라까지 등장했다. 물론 무료로...


처음부터 음식을 주는 것은 아니었고 7-8권쯤 보고 나면 "학생, 뭐 좀 먹을려?" 하며 슬그머니 내주셨다. 먹고 나면 100원짜리 동전 하나 달랑 내밀고 나오기가 미안해서 10권을 더 보고 나와야 했다. 그러느라 수업에 늦은 적도 있다.


카미가제식의 무한 출혈 경쟁은 한 달 정도 이어졌다. '만화대여업협회' 뭐 비슷한 기관의 행정권고로 가격은 원래의 표준 가격(50원/100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서비스 경쟁은 여름방학까지 이어졌다. 두 시간 이상 수업이 비면 거의 만화 골목을 찾았고, 500원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호사를 누렸다.


아참, 그래서 '공포의 외인구단'은 봤냐고? 당연한 것 아닌가? 대학 1학년 1학기는 이현세, 박봉성, 고행석, 허영만 등에 푹 빠져 살았다. 학사경고를 피해 간 게 신기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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