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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승리가 아닌,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의 승리다

by 이문웅

이번 대선 결과를 놓고 민주당의 승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것은 민주당의 정치력이나 정책의 우위로 얻은 성과가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이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지키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역사적 상징의 반사이익이었다. 동시에 국민의힘이 여전히 스스로의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채 구시대의 유산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세대는 50대, 그중에서도 60년대 중반에 태어난 유권자들이다. 이들은 청년기에 군사독재 정권의 억압을 직접 체험했고, 1987년 6월 항쟁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의 현장을 살아낸 세대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교과서에 쓰인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피와 눈물로 쟁취해낸 역사이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정신적 토대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정당을 고르기보다 체제를 지키기 위해 투표했다.


국민의힘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과거 권위주의 정당의 잔재를 떨쳐내지 못한 채 여전히 구시대의 언어를 반복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발언 하나, 선거 전략 하나에도 시대착오적 시선이 배어 있다. 이들에게 50대 유권자들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 것이다. “당신들은 과거로 돌아가려는가?”


반면 민주당은 수많은 논란과 실책, 무능과 위선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라는 이름을 고수해왔다. 그것이 완벽한 정당이어서가 아니라, 이들에게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50대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은 ‘지지의 대상’이 아니라, 방어해야 할 가치의 마지막 경계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프레임은 이 세대에게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선거의 공정성과 제도적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시도를 경계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누구보다도 선거제도의 가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재의 시절, 부정선거와 조작의 시대를 겪으며 그 제도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체험했던 세대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완전하진 않아도 반드시 지켜야 할 유일한 질서였다.


그 중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역사의 왜곡’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느새 민족주의자들의 맛있는 밥상이 되어버렸고, 국민들은 그 밥상 위에 차려진 이야기들을 진실인 양 교육받고 믿어왔다. 역사는 살아 있는 진실이 아니라, 각 진영의 입맛에 맞게 조리된 음식처럼 소비되어온 것이다. 진실은 그렇게 사라졌고, 남은 것은 각 진영의 논리에 따라 반복 생산된 편향된 역사뿐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국민은 진실을 믿기보다는, 진영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진영 속에서 과거의 기억은 오염되거나 미화되며, 결국 증오와 분열의 정치만이 되풀이된다.


결국 이번 대선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투표였고, 민주주의에 대한 마지막 믿음에 기댄 세대의 고뇌 어린 선택이었다. 우리는 지금 이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을 단지 당선 여부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이 결과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직시하는 일이다. 그것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이며, 기억과 진실의 문제다.


이제 여당이 된 민주당이 가는 길은 그리 예측불가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상징성과 기존의 정치 관성을 따라 갈 것이다. 정작 안타까운 것은 야당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이다. 이 당은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헤매며, 새로운 시대정신과 괴리된 언어만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지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야당의 탄생이다.


새로운 야당은 이제 과거의 잔재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정강의 수정이나 인물 교체로는 불가능하다. 제2의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심정으로, 오직 진실과 미래의 가치에 기반한 완전한 재구성이 필요하다. 그 길만이 진영이 아니라 진실을 따르는 정치, 증오가 아니라 책임을 나누는 정치를 다시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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