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바쁠 것도, 짬을 내지 못하는 것도 아닌 일상이다.
그래서 굳이 휴가라고 이름 붙이기도 뭐하지만, 찌는 듯한 무더위와 함께 따라오는 여름휴가를 가보기로 한 날이 돌아왔다.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여행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긴 한데 새벽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슬며시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 등 뒤로 슬며시 운을 띄워 보았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갈 수 있을까” 했더니 우중 캠프는 더욱 좋단다.
이번 휴가가 남편의 로망이었던 휴양림 캠핑을 가는 것이기도 했고, 우리 가족 완전체가 가는 것이기에 더는 태클을 걸지 않았다. 3대가 덕을 쌓아야 휴양림 숙박 추첨에서 당첨된다는 둥, 당신 손놀림이 빨라서 예약을했다는 둥 남편은 아주 의기양양해 했다.
사실 나는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고 시설 좋은 호텔이 더 좋은데...
다행히 추적추적 오던 비는 그치고 햇볕 쨍쨍한 날씨로 떠날 수 있었다.서울에서 가까운 양평이라 그리 멀지 않아 내심 좋아했는데 도로마다 휴가로 인해 차량정체가 만만치 않았다. 어느 누가 휴가가 삶의 청량제라고 했던가. 휴가는 언감생심 더욱더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는 듯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숲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드디어 높은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 쌓여 있는 휴양림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체크인을 하고 조금 올라갔더니 데크가 바로 보였다. 일단 데크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랑 엄청 가까웠기 때문에 짐을 나르는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캠핑을 많이 했던 딸아이는 다른 곳은 오르막길도 많고 부대시설이 좋지 않은데 좋은 곳을 선택했다며 아빠에게 엄지 척을 날렸다. 둘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텐트 폴대 한마디 한마디를 연결해 가면서도 깔깔 호호 이야기꽃이 한창이다.
바로 옆 데크는 부부가 왔는지 남자분이 텐트를 치고 있는데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계속 실수하는 모습이 캠핑 초보자인 듯싶다. 남편은 그네들을 보며 “나도 당신과 저렇게 둘이 오는 게 로망인데...” 하는 말에 난 일언지하에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침을 놓았다.
텐트를 무사히 친 후 캠핑의 꽃이라고 하는 먹거리를 다 펼쳐 놓고 보니 정말 어마어마했다. 마치 며칠 머물려고 온 사람들의 식량처럼.
신혼 초부터 요리하는 걸 즐겨한 남편의 큰 손 덕분에 우린 아주 거한 한상을 대접받은 기분이었다.
양껏 먹고서 우리는 산책로를 걸었다. 산림청 1호 ‘치유의 숲’으로 지정된 이곳에서 산림 치유 프로그램은 단연 인기란다. 예약하지 않아도 당일 5인 이상이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었는데 아쉽게도 인원을 만들지 못해 참가하진 못했다. 다음에는 이 프로그램도 꼭 한번 참가해 보고 싶다. 대신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숲으로 들어가 보았다. 데크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어느 연령대나 쉽게 걸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어깨를 둥글게 돌리며 걸었더니 그동안 뭉쳤던 어깨 근육이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주중에 내린 비로, 숲길 따라 계곡물 소리가 발길에 장단을 맞춘다. 작지만 우렁찬 계곡 물소리가 힘차게 들려왔다.
돌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생명의 끈질김도 느끼며 걸었고, 서걱서걱 풀잎을 꿰는 벌레들의 움츠림도 발견했다. 숲 기운 가득한 피톤치드를 맛보게 하는 울창한 잣나무가 땅 속 깊이 뿌리내려 우리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이 새삼 고마웠다.
또 한걸음 옆으로 비켜서서 큰 돌무덤 3개의 소원바위를 지날 때에는 이렇게나 많은 돌무덤을 쌓은 사람들의 소원은 과연 무엇일까 오지랖 넓게 사뭇 궁금해지기도 했다.
한참을 가니 치유의 숲 트레킹 코스가 보였다. 이곳이 왜 치유의 숲인 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화려하지 않아 나의 아지트로 삼고 싶은 공간이었다.
도시에서의 ‘빨리빨리’란 단어는 잠시 내 마음 깊숙이 넣어두고, 천천히 걸으며 고개를 하늘 높이 올려보기도 했다. 양팔을 버려 바람도 느끼고 자연의 공기도 실컷 마셔본다. 매일매일 쳇바퀴 돌 듯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가족들과 스스럼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새삼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 귀한 시간이다.
솔직히 차로 오는 내내 길도 안 좋고, 차도 막히고 해서 불길한 예감까지 들어 투덜거렸던 마음이 싹 달아났다. 오히려 치유의 숲을 내 마음 속에 품어서 마치 위로가 필요할 때면 찾아오고픈 곳이 생긴 것 같아 마음 든든했다. 이렇게 숲길은 화려하지 않아도 사계절 내내 우리네 마음을 다독이는 듯하다.
“다음에 또 오자”
에 절대 그럴 리 없음을 단호하게 내뱉었던 내가
"피톤치드 보약 먹으러 가자"
하고 먼저 슬금슬금 나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