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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Jan 29. 2021

차라리 화를 내

나를 향한 '화', 우울 그리고 자살

젊고 어여쁜 모 연예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 그 비고는 이제 한국을 넘어서 kpop을 사랑하는 전 세계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도 그 소식이 하루 종일 사람들을 먹먹하게 했고,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죽음에 반응했다.


누군가는 잠시 안타까움을 느끼긴 했으나 가십거리로 삼기 바빴고, 누군가는 그녀를 위해 진심으로 애도한 후 자신의 일상을 살았으며, 누군가는 일면식도 없던 그녀 일에 왠지 모르게 하루 종일 먹먹해하며, 자신도 한 번쯤 생각해 보았었던 자살을, 굳게 닫아두었던 자살충동 상자를 다시 열어 들여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저는 졸업식날 죽는 상상을 해요.


왜?

그 날이면 너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모든 게 끝나는 날이잖아.

시간 내 과제 제출도,

어려웠던 친구관계도.

졸업식날 죽으면 좋은 이유라도 있니?


그냥요. 더 이상 아무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아무래도 아이는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한 듯 보였다. 아이 주변에는 아이를 도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아이는 그들이 자신을 도와주려 하면 할수록 자꾸만 그들을 더 이상 실망 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에 부흥하지 못하는 자신을 더 미워했다.


마음이 아플 때 사람들은 각기 다르게 반응한다. 어떤 이는 일탈행동을 보이거나 누군가를 비난하는 형식으로 반응한다. 우리는 그것을 외현화한다고 말한다. 감정을 밖으로 쏟아 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마음에 흠집을 내곤 한다. 내가 살겠다고.


어떤 이는 모든 비난을 자기에게로 보낸다. 우리는 그것을 내현화라고 말한다. 이들은 그 상황에 화가 나지만 외부로 표출할 용기가 없다. 그렇게 밖으로 표현할 바에는 나에게 쏟아붓는 것이 더 편하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해를 하고, 스스로를 살인하기도 한다.


우리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보고, 얼마나 우울한 마음이 컸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지레짐작한다. 그래서 다독여주고, 다 잘 될 거라고 희망의 말을 전해주기 바쁘다. 정말 우울한 이들에게 이러한 말들이 그 마음까지 가 닿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상황을 어쩌지 못하는 게 화가 나고,

이 상황조차도 이겨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억울하지만 이 감정을

외부로 용감하게 쏟아내지 못하는 게 바보 같고,

잘못된 선택을 했던 스스로를 벌주고 싶은

그런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그들의 마음 한 편에는, 자신이 아프길, 다치길, 사라져 버리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에다가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다 잘 될 거야'라는 위로의 말은 맞지 않는 연고 같은 게 아닐까?


'화'를 외현화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그 행동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들어주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 말고 더 좋은 방법은 없을지 함께 고민해주면 된다. 하지만 내현화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 싸늘한 마음을 감추려 더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우울해하고, 자살을 생각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왜 스스로에게 그렇게 화가 났는지, 어쩌다가 스스로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게 됐는지, '화'를 달래어 주면 된다. 울적한 마음이 아니라. '화'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도록 하면 된다. 부풀어진 풍선에 투명테이프를 붙이고 바늘구멍을 내어주면, 한껏 팽창되었던 풍선이 적당한 속도로 바람을 빼듯이.


그 젊고 어여쁜 모연예인이 스스로를 희생하며 보여주고 싶었던 '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밖으로 밖으로 표출하다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 그 화를 자신에게로 돌린 것이었을까?


차라리 계속 화를 내지.

남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돌발행동들로,

필터링 없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계속 그렇게 하지.


나는 그녀의 죽음을 듣고,

'잘 표출하고 있으니까 괜찮겠지.' 생각하고,

댓글 하나 달아주지 못한 사실이 후회됐다.

'잘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는 게 백배 나아요.

잘못한 것 없는 스스로에게

화를 돌리지 말고,

지금처럼 해요'라고

댓글을 달아볼걸.


이제 와서 어쩌지 못하는 그 마음을 담아

그녀의 죽음에

덩달아 죽음을 떠올리던 아이들에게,


'학교라는 시스템이 그래.

계획능력은 낮지만

창의성 높은 아이들은 어떡하라고,

제 때 과제 안내면 안 되게,

사회성 없으면 루저처럼 느껴지게,

이렇게 만들어 놓았느냐고.

그 일괄적인 틀에

모든 아이들을 다 맞춰놓으니 그렇지.

학교에서 실패했다고

네가 절대 낙오자가 아니야.

학교는 인생에 아주 짧은

그냥 한 페이지일 뿐이야.

너의 앞에 분명

너의 진가를 발휘할 그 날이 올 거야.

그러니 학교에서

원하는 만큼 적응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너에게 화내지 마.

그냥 차라리 이 상황에 성질을 내자 "라고,


더 앞장서서 화를 낸다.

아이들이 더 편하게 화를 낼 수 있도록.

그래서 자신에게 화를 쏟아부어 삼켜지지 않도록.


혹시나 지금

자살충동 상자를 만지작 거리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여쭤보고 싶다.


당신은 왜 스스로에게 화를 돌리려 하고 있나요?

무슨 이유로.



*  모든 글은 실제 사례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심리학적 이해를 돕기 위해 창작된 사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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