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라 Jan 09. 2021

미안, 내 마음은 지금-여기에 없어

Here and Now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의 일상은 무료하다.

특별히 병원에 가도 

이렇다 할 진단명을 받지 못하는데

몸은 이곳저곳 아프다.

아마도 세월이 뼈 마디마디마다 

가져다 놓고 간 흔적이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프신 곳 있으세요?

....누군가 나를 염려해주는 말.

그래도 이만하시면 건강하셔요.

....그동안의 내 노력을 인정해주는 말.

계속 안 좋으시면 다시 오셔요. 

....나를 기다려 주는 말.


한 평생, 

역동적으로, 

부지런하게 일하며 살았었는데,

일을 모두 내려놓고 쉬게 된 지금의 하루는 참 길다. 

말벗이 절실한데 친구들은 많이 세상을 떠나고 없다

저 살기 바쁜 자녀들과 손주들은 

아주 간간히 얼굴을 내비칠 뿐 

홀로 이 길고 무거운 하루를 또 견뎌내야 한다. 


그런 할머니를 뵈러 갈 때면, 

이것저것 맛있는 것도 권해드리고 싶고,

멋들어진 경치도 구경시켜드리고 싶은데,

할머니는 그 지독하게 지루한 집에서 

나가실 생각이 없다.

나의 두 손을 끌어다가 자리에 앉힌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할머니의 찬란했던 시절,

환희의 순간들,

과거에 힘들었던 기억, 

삶에 대한 분노,

누군가를 향한 원망. 


이미 수십 번을 들었지만 

할머니는 늘 새로운 이야기처럼

다시, 다시, 그리고 또다시 

이야기를 하신다. 


이런 반응, 저런 반응, 다 해보다가

나중에는 그저 듣는다. 

간간이 내 할 일도 하면서. 

적당한 고개 끄덕임과 간략한 대답을 해드리면서.

할머니가 원하시는 것은 어떠한 반응도 아니므로.


찬란했던 그 시간은 지났어요.

아프고 참혹했던 그 시간도 끝났어요.

지금도 찬란할 수 있어요.

그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그 아픔을 되씹지 않아도

지금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요.

지금, 여기를 봐요.

그때 그 시간보다 

더 즐겁고 좋은 추억을 

지금 이 순간 새로 만들 수 있어요.


라고.

온 표정으로, 말로, 눈빛으로 말해도

할머니의 마음은 지금-여기에 없다.


할머니뿐이 아니다.

때로는 우리도 과거에 산다.

현재를 피하고 싶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불쾌한 경험이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도 그렇다. 

끝난 연애를 수 년동안 붙들고 있으면서

바로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슬픔에 잠겨있기도 하는 게 

우리의 나약함이다.


과거로 돌아가

힘들었던 상처를 다시 해집기도 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되돌아보며 위안을 얻기도 한다. 

한 번 두 번 과거로 돌아가던 나의 생각이

지속적으로 과거에 살고,

현재 살아가는 삶에 몰입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는 과거에 갇힌 것이다.

과거에 갇히고 나면

우리의 몸은 현재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의 마음은 현재에 없다. 


미안, 내 마음은 지금-여기에 없어.

아직 그 시간들을 살고 있거든. 

할머니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지켜보면서 

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분명 저를 그렇게 쳐다봤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