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and Now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의 일상은 무료하다.
특별히 병원에 가도
이렇다 할 진단명을 받지 못하는데
몸은 이곳저곳 아프다.
아마도 세월이 뼈 마디마디마다
가져다 놓고 간 흔적이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프신 곳 있으세요?
....누군가 나를 염려해주는 말.
그래도 이만하시면 건강하셔요.
....그동안의 내 노력을 인정해주는 말.
계속 안 좋으시면 다시 오셔요.
....나를 기다려 주는 말.
한 평생,
역동적으로,
부지런하게 일하며 살았었는데,
일을 모두 내려놓고 쉬게 된 지금의 하루는 참 길다.
말벗이 절실한데 친구들은 많이 세상을 떠나고 없다
저 살기 바쁜 자녀들과 손주들은
아주 간간히 얼굴을 내비칠 뿐
홀로 이 길고 무거운 하루를 또 견뎌내야 한다.
그런 할머니를 뵈러 갈 때면,
이것저것 맛있는 것도 권해드리고 싶고,
멋들어진 경치도 구경시켜드리고 싶은데,
할머니는 그 지독하게 지루한 집에서
나가실 생각이 없다.
나의 두 손을 끌어다가 자리에 앉힌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할머니의 찬란했던 시절,
환희의 순간들,
과거에 힘들었던 기억,
삶에 대한 분노,
누군가를 향한 원망.
이미 수십 번을 들었지만
할머니는 늘 새로운 이야기처럼
다시, 다시, 그리고 또다시
이야기를 하신다.
이런 반응, 저런 반응, 다 해보다가
나중에는 그저 듣는다.
간간이 내 할 일도 하면서.
적당한 고개 끄덕임과 간략한 대답을 해드리면서.
할머니가 원하시는 것은 어떠한 반응도 아니므로.
찬란했던 그 시간은 지났어요.
아프고 참혹했던 그 시간도 끝났어요.
지금도 찬란할 수 있어요.
그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그 아픔을 되씹지 않아도
지금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요.
지금, 여기를 봐요.
그때 그 시간보다
더 즐겁고 좋은 추억을
지금 이 순간 새로 만들 수 있어요.
라고.
온 표정으로, 말로, 눈빛으로 말해도
할머니의 마음은 지금-여기에 없다.
할머니뿐이 아니다.
때로는 우리도 과거에 산다.
현재를 피하고 싶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불쾌한 경험이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도 그렇다.
끝난 연애를 수 년동안 붙들고 있으면서
바로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슬픔에 잠겨있기도 하는 게
우리의 나약함이다.
과거로 돌아가
힘들었던 상처를 다시 해집기도 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되돌아보며 위안을 얻기도 한다.
한 번 두 번 과거로 돌아가던 나의 생각이
지속적으로 과거에 살고,
현재 살아가는 삶에 몰입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는 과거에 갇힌 것이다.
과거에 갇히고 나면
우리의 몸은 현재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의 마음은 현재에 없다.
미안, 내 마음은 지금-여기에 없어.
아직 그 시간들을 살고 있거든.
할머니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지켜보면서
묻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