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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y 11. 2022

초선이라는 해어화

Meaning Flower-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나온 모란

사람을 꽃에 빗대는 표현은 많고 많지만, ‘해어화’는 독보적이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이 호칭은 어느샌가 양귀비에서 시작해 기녀와 동일한 의미로 자리 잡았다. 요염한 장미인지, 청초한 붓꽃인지, 깨끗한 연꽃인지 고민하며 자연스럽게 기생의 꽃을 찾게 되어서일까? 다른 표현과는 다른 매력이 넘친다. 꽃에 비유되는 여성 캐릭터는 많고도 많지만, 제일 깊이 기억에 남은 건 자신의 꽃과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는 존재였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초선처럼 말이다.     


초선은 다재다능한 여인이다. 신들린 검무와 구성진 출사표가 특출나고, 작품 내에서 여협으로 꼽힌다. 외모도 흠잡을 곳 없이 아름다워 중국의 4대 미인인 폐월(閉月) 초선을 이름으로 삼을 정도다. 하늘의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렸단 매력이라 칭송받는데, 그 순정도 대단하다. 초선은 주인공 윤희와 성균관 신방례로 인해 만난다. 장안의 제일 기생인 초선의 속곳(속옷)을 가져오라는 쪽지를 받은 윤희가 초선을 찾아오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이다. 원작과 드라마가 이후 풀어내는 흐름은 다르지만, 둘 다 초선이 윤희를 연모하여 모란꽃 다섯 송이가 수 놓인 초선의 속곳에 글을 써 건네주는 점은 똑같다. 이후 원작 소설에서는 윤희와 헤어진 초선이 상심한 탓에 옥당기생이 되었고, 드라마에서는 윤희가 남장여자란 사실을 안 후에도 윤희의 편을 들며 보호한다. 어느 쪽이든 초선의 애처로운 진심이 실감 난다.     


어찌 보면 이상적인 기생 그 자체다. 순애보인데다 재주 있고 아름다우며, 도도한 매력까지 갖췄으니 그야말로 모두의 이상형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초선의 상징 꽃이 모란이라서 거슬렸다. 모란은 언제나 찬란했기 때문이다. 모란의 지위는 내려온 적이 없었다. 그 옛날 설총의 <화왕계>에서 꽃들의 왕 화중왕으로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후궁 견환전>이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등의 많은 사극 드라마에서도 정궁(正宮)의 의미로 사용됐다. 이러한 매체에서만 모란이 사랑받은 게 아니다. 중국에서든 우리나라에서든 오랜 애정의 주인이었다.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당나라 때는 모란 감상이 하나의 유행이라 그 감상 장소가 오늘날의 ‘핫플’이 됐다고 한다. 청나라의 국화였음은 물론, 현 중국의 국화 후보로 계속 거론될 만큼 인지도가 탄탄하다. 한반도에서도 조선 이전부터 부귀를 뜻한다는 이유로 대스타였다. 온통 빛나는 명예와 인기로 가득한 게 바로 모란꽃의 역사다. 다 좋은 이야기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너무 좋기만 한 꽃인 점, 그게 문제였다! 그런 귀한 꽃이 왜 기생의 상징으로 표현됐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모란의 모습. 작약과 유사하나, 풀이 아닌 나무란 차이가 있다.>
<연인의 선물로 인기가 많은 작약의 모습. 모란과 유사하나, 차이가 있다.>

만약 초선의 꽃이 모란과 비슷한 작약이었다면, 이토록 고민하지 않았을 거다. 작약은 모란과 같은 작약 속 작약과의 식물인 만큼 유사하고, 아름다움 역시 뒤지지 않는 꽃이니까. 게다가 꽃말의 차이 등을 감안하면 작약이 훨씬 더 기생인 초선과 어울린다. ‘부귀, 영화, 왕자의 품격, 행복한 결혼’보다야 ‘수줍음’이 기생의 사랑과 가까운 관계다. 또 생각해야 할 부분은, 하필 비유되는 대상이 기생이란 점이다. 천한 기생에게 지나친 고귀함은 때로 비꼼의 대상이 된다. 앞서 얘기한 해어화처럼, 말을 알아들을 만큼 영특하지만 그래 봤자 꽃이란 비웃음이 담겨 있단 소리다. 특히 꽃말 중에서도 ‘행복한 결혼’은 기생의 세상에선 덧없는 환상의 일인데, 왜 가져와야 했던 건지 모르겠다. 아무 의미가 없다면 원망스러울 요소다.      


앞서 이야기한 모든 부정적인 생각에 뒤지지 않을 만큼, 모란의 부귀와 영화는 초선에게 완벽히 맞아떨어진다. 그 화려한 자태도 매혹적인 기생의 도도한 자태와 딱 어우러지니 걱정이 무색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평범한 로맨스 소설이었다면 그걸로 초선의 상징은 역할을 다 했겠지만, <성균관 스캔들>은 성별의 한계, 파벌의 한계 등 한계에 대해서 말하는 작품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초선의 모란꽃이 신분의 한계와는 관련 없이 아름다움에만 관련된 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초선의 사랑이 결국 실패했다는 것까지 합치면, 모란의 빛깔 앞에 조금 씁쓸해진다. 어울리지 않은 고귀한 모란으로 하여금 이루어질 수 없는 감정의 한계를 암시하는 셈이니 말이다.      


그래도 초선이 모란꽃을 지닌 사실 자체는 마음에 든다. 처음엔 낯설었고, 놀라 걱정스러웠지만 이젠 정리가 됐다. 모란을 고른 이유가 그녀의 자존심이든, 신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든, 그녀의 모습 그 자체든, 혹은 우월한 기생의 권리든 딱 초선 다운 선택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가는 그 모든 걸 염두에 두고 초선에게 오만가지 꽃 대신 모란 하나만을 건넸을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모란이 어울리는 여인이었기 때문에, 작가도 별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초선은 자신의 첫사랑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어도 물러서지 않았던 여걸이고, 자신의 마음을 후회하지 않았다. 발걸음은 당당했고 품위 있는 교태가 뿜어져 나왔다. 기생인 그녀였지만 모순적이게도 가장 어울리는 꽃이 모란이었음을 존재로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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