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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28. 2022

이름대로였던 라벤더 아주머니

Meaning Flower-소설 <에이번리의 앤>에 나온 라벤더

내 또래에게 ‘빨간 머리 앤’은 어쩌면 실존 인물보다도 유명할 거다. 하나, 대다수는 뒷이야기를 모른다. 후속작도 소녀 시절만큼 흥미가 넘치는데 말이다. 특히 <에이번리의 앤>은 최고다. 어른이 된 앤의 성숙미며, 학교 에피소드, 발전한 길버트의 관계까지! 거기다 라벤더 아주머니의 등장은 도저히 에이번리의 앤을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단연컨대 라벤더 아주머니는 내가 아는 모든 중년 여인 중 가장 독특하다. 공주보다 제멋대로고 소녀보다도 사랑스러운 성격을 아낌없이 내뿜는다. 라벤더 아주머니는 앤이 우연히 만난 분인데, 같은 독신녀인 마릴라와는 정반대의 자태로 표현된다. 아름다운 하얀 머리는 부풀려 동그랗게 올리고, 발그레한 볼과 커다랗고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 보조개를 지닌 소녀 같은 얼굴로 말이다. 이 신비한 중년 여인은 앤과 놀라운 속도로 우정을 쌓다가 앤의 학생이 전 약혼자의 자식임을 전해 듣는다. 그 이후, 반짝거리지만 서글펐던 외로움은 라벤더의 인생에서 영영 사라지게 된다. 한번 잃었던 사랑과 새로이 다가온 우정이 그녀를 찾자, 행복만이 그녀의 곁에 남았다. 앤과 이야기하는 순간은 또래의 아가씨처럼 보일 정도다! 그래서 무심코 이름인 ‘라벤더’라는 꽃도 그런 의미를 담을 거라고 생각했다. 발랄함이나 순정, 젊은 날의 추억 같은 그립고 동화스러운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라벤더 꽃의 모습.>

웬걸. 정반대였다. 라벤더는 그 이름부터가 동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씻다'라는 뜻인 라틴어 'Lavare'에서 유래했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랜 세월 깨끗한 향의 대명사로 사용되며, 꽃과 허브향의 혼합형 향이라 인기가 많았다. 과거 유럽의 귀족들은 꽃을 잘 갈아 비스킷으로 먹었고, 현대에서도 각종 제품으로 나온다. 향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대중적이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진정 효과를 바라고 찾기 때문이다. 결코 유사과학 수준의 가벼운 까닭이 아니다. 그 효능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라벤더 향기의 주 성분인 '리날룰'이 후각을 자극시키면서 신경 회로의 활성화와 진정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용적이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보통 꽃말은 낭만적인 이야기와 더 친하기 마련인데, 라벤더는 뜻밖에도 이런 특성과 가깝다. 진정 효과가 있음을 소리치듯 ‘침묵’과 ‘정절’이란 뜻이 담겨 있다. 라벤더는 희귀한 경우로, 꽃말과 전설, 효능이 서로 이어진다. 전설은 왜 이런 의미인지 부연설명을 제공한다.   

  

옛날 어떤 공주가 타국의 왕자를 사랑했다. 왕자는 공주에게 호감을 보였지만, 공주에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왕자의 나라가 전쟁을 하게 되자, 공주는 왕자에게 떠나기 전에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왕자는 끝내 대답하지 않고 떠났다. 안타깝게도 왕자는 전사하고 말았고, 그걸 들은 공주는 절망해 그 자리에서 죽었다. 본디 왕자도 공주를 사랑했지만, 벙어리인 걸 밝히면 공주가 떠날까 봐 공주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이후 공주가 죽은 곳에서 꽃이 피어났고, 그 꽃이 라벤더라고 한다.

     

전설도, 꽃말도, 효능도 라벤더 아주머니의 첫인상과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라벤더 아주머니의 인생사를 본 바 이 전설은 일종의 밑밥이었다. 라벤더 아주머니는 정말 별 것 아닌 일로 약혼자와 싸우고 헤어졌다. 그 이후로는 심부름하는 여자 아일 제외하면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골짜기 집에서 홀로 살았다. 여자아이조차 시간이 지나자 떠나고 싶어 해서 4명의 자매들을 차례로 데리고 있었다. 눈여겨볼 건 그 여자아이의 이름을 여전히 ‘샬로타’라고 부른단 점이다. 첫 번째 아이만 샬로타였고 나머지 아이들은 제각기 본명이 있는데도 순서를 붙일 뿐 본명을 불러주지 않았다. 이 장면은 가볍게 지나가는 일화였지만, 나는 그 호칭이 라벤더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기분이었다. 과거에서 변하고 싶지 않은 소녀다움과 발랄함, 그리운 약혼 시절, 그 모두를 합친 게 그대로인 아이 이름에서 느껴졌다.      


라벤더는 주인공인 앤보다도 화사하게 묘사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낭만을 누린다. 심심하면 메아리를 듣고, 손님 없이도 다과회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리 깊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라벤더는 딱 이름 같은 시간을 보냈다. 고요히 침묵한 채 한 사람만을 기억하는 시절을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운 나날은 향기로웠고, 사람을 진정시켰다. 젊은 시절 뜨겁게 다툰 연인이 차분하게 서로를 마주하게 만들 경지였다. 어느 미신에서 말하길 사람은 이름의 운명을 따라가는데, 그에 따르지 않으면 악운이 닥친다고 했다. 동양의 미신이지만 라벤더 아주머니는 그런 경우의 대표가 아닌가 싶다. 이름대로 살아 다시금 행운이 찾아온 것처럼 보이는 게, 온전히 내 착각 같지 않다.     

<여러 송이가 붙어 피어나야 제 아름다움을 제대로 뽐내는 라벤더 꽃밭.>

누군가는 라벤더 아주머니를 그저 잠깐 지나가는 조연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오래도록 인상에 남는 분이었다. 그분은 한 송이로 탐스러운 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넓은 땅에 만연한 게 절경인 라벤더처럼, 여럿이 있어야 고운 빛을 온전히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딱 맞는 운명을 맞이한 걸 보는 건 활자 속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그 탓에 나는 그분을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이름대로 사랑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웃음을 유지할 분의 잔상이 여전히 생생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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