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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25. 2022

'동백 아가씨'였던 이유

Meaning Flower- 소설 <춘희>에 나온 동백꽃

우리는 수많은 편견에 갇혀 살아간다. 작은 파편만을 가지고도 얼마나 확신에 가득한 생각이 나오는지 모른다. 한 사람의 모습이나 태도가 아니라 직업, 거주지, 외모도 선입견의 대상이 된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춘희>를 접했을 때의 감정은 여전히 또렷하다.     

<'춘희'의 오페라 공연 포스터.>

누가 그 충격을 표현할 수 있을까. 앤이나 주디, 세라 같은 마음 착한 소녀들만 봐 왔던 내게 매춘부의 이야기는 다른 세상의 매력이었다. 사실 처음 봤을 때는 매춘부가 뭔지, 왜 돈을 주고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 당시 곱디고운 동백 아가씨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슬픔만 읽어낼 수 있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야, 왜 남자 주인공 아르망의 아버지가 여주인공 마르그리트를 찾아갔는지 납득했다. 그리 후회하고 아파할 거면서 왜 아르망과의 잔인한 이별을 택했는지도 이해됐다. 매춘부라는 직업은 그만큼의 영향을 끼치는 요소였으니 말이다. 마르그리트를 좋아했던 내면의 내가 반박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변하지 않는 건, 비극이라는 아픔과 그녀의 아름다움 뿐이었다.     


길에 나서면 모두가 쳐다봤다는 묘사를 증명하려는 듯, 그녀의 매력은 끊임없이 언급된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반짝이는 눈동자, 장밎빛 입술…. 청초한 자태가 선명히 떠오르도록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호칭은 그런 외모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동백 아가씨’란 뜻의 춘희는 그녀의 동백꽃 사랑 때문이었다. 한 달에 25일은 흰 동백을, 5일은 붉은 동백을 가지고 사교계와 극장에 나타났단다. 사실 여기서부터 이질감은 자리했다. 어떤 꽃을 좋아한다고 그 꽃만 늘 들고 다니는 건 쉬이 보이지 않는 모습이 아닌가. 가장 화려한 장미도, 매춘이란 의미를 희석시키는 백합도 아닌 동백을 좋아한 이유도 의문이었다.    

  

<하얀 동백은 춘희가 사랑한 꽃인 동시에 샤넬의 상징이다.>

물론 동백꽃의 인기를 감안하면 그리 별난 등장은 아니다. 명품 브랜드 샤넬의 상징부터가 흰 동백꽃이 아닌가. 일본에서도 수없이 품동이 개량되고 신사 주변에 심는 걸 선호했을 정도다. 꽃말 역시 하얀 동백꽃은 ‘비밀스러운 사랑’, ‘굳은 약속’, 혼례에 쓰일 경우 ‘손을 놓지 않는다’란 의미가 담겨 있다. 붉은 동백꽃도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한다’라는 뜻이다. 다른 꽃들이 퇴색하는 겨울에 더 생생한 꽃이니, 생김새로도 꽃말로도 싫어할 이유가 없다. 어쩌면 매춘부라는 마르그리트의 직업과 대비되는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동백을 고른 걸지도 모른다. 모두가 기대하지 않는 매춘부의 ‘진심’이나 ‘사랑’을 보여준 인물이니 말이다. 겨울에 홀로 피어난 동백과 닮아있는 모습이 꽤 된다. 다른 매춘부들과는 달리 홀로 고고하게 돌아다니며 비밀스런 귀부인처럼 생활한 자태까지도 동백과 유사하다. 그런 상황 외에도 더 선호했던 하얀 동백꽃의 꽃말을 보면, 작가의 안배가 체감된다. 비밀스러운 사랑과 굳은 약속이라니. 둘은 신분 차이 때문에 비밀스러운 사랑을 해야 했고, 약속만은 굳건했다. 하지만 결국 두 손은 헤어졌다.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두 사람의 운명을 미리 예고한 것일 수도 있단 이야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백꽃의 전설은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비참하고 슬프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병들어 죽은 아내, 형의 질투로 붉은 피를 토하고 죽은 동생, 도망가다 떨어져 죽은 아내의 이야기들은 사람의 마음을 헤집는다.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다른 꽃들과 다르게 꽃송이가 툭 떨어져서 그럴까. 아니면 이런 구슬픈 전설 때문일까. 동백꽃의 떨어지는 모양이 참수했을 때의 사람 같다며 기피한다고도 한다. 마르그리트가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죽은 걸 떠올리면, 동백꽃이 그녀의 인생과 겹쳐 보인다. 누구보다 매혹적이어도 결국 한번에 지고 마는 한 송이의 동백 아가씨라니, 마르그리트 그 자체다.      


문학과 현실은 다르다. 마르그리트의 사랑이 애달프다고, 매춘부란 직업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는 게 아니다. 단지 동백 아가씨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웠고 그 이름에 걸맞게 지고지순한 순애보였던 여인의 최선이 달리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뿐이다. 처음 동백 아가씨를 만났던 어린날에도 마르그리트와 동백은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마르그리트보다 아르망의 아버지에게 더 공감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마르그리트의 존재 의미는 동백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쓸모가 넘치는 동백꽃과 다르게 마르그리트라는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되느냐고 냉소를 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좋아한 꽃처럼 아르망의 인생에서 영원한 약속으로 남았다.      


이 생에선 이어지지 않아도 다음 생에선 이어지기를.     


슬픈 끝맺음을 맞은 연인들에게 흔히 주어지는 문구다. 뻔하고 평범할지라도,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이라는 아픈 인연이 실패한 ‘손을 놓지 않는다’라는 약속이 언젠가는 지켜졌으면 좋겠다. 둘은 그리 힘든 상황에서도 사랑을 꽃피웠다. 다음 생에는 혹독한 겨울 아래 변치않은 동백꽃의 푸르름을 닮길 바란다. 그들의 진심은 황홀한 행복으로 연결되기에 충분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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