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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여운 여인 May 30. 2022

엄마와 딸로 살아가기

지금은 엄마와 딸의 역할에 집중할 때

"학교 잘 다녀와. 좋은 하루 보내. 사랑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들어 배웅해준다.

누가 보면 멀리 여행이라도 가는 줄 알겠지만,

엄마인 나의 애정 표현 중 하나다.

삼 남매가 차례로 등교하고 난 후,

종종걸음으로 이방 저 방 다니며 대충 집을 정돈한다.

아침 시간은 늘 분주하지만,

특히나 오늘은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이른 아침부터 만든 반찬 몇 가지를 용기에 담는다.
쌓인 설거지는 못 본 척,
나를 기다리고 계실 엄마 생각만 한다.
친정 갈 준비를 마쳤다.

이제 딸이 될 시간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내가 되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세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워킹맘으로 살아가다 보니 딸의 역할에 소홀했다.

아니, 잠시 잊었었다.

언니가 친정 옆에서 살면서

부모님을 잘 챙겨드리니 마음 놓고 내 삶에 집중했다.

참 열심히 살았다.
내 몸 돌볼 틈도 없이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결국 몸에 무리가 오고 건강에 적신호가 깜빡였다.

10년을 전업 주부로 살면서 아이들 양육에 집중했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욕심을 내어

워킹맘의 길에 들어섰다.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었기에 몇 년간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듯 즐겁게 일했다.


일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고

내 몸도 점점 여기저기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때다.

쉬어갈 타이밍


6년간의 워킹맘 생활에 쉼표를 찍으며,
내 건강을 돌보고
아이들을 더 잘 챙길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나를 키우는 일!
자기 계발에 눈을 뜨니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또 없었다.
야심 찬 계획도 세웠다.
아이들이 등교하면 도서관에 출근해서
그간 읽고 싶었던 책도 마음껏 읽고,
행복한 글쓰기도 원 없이 하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아, 놓친 게 있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엄마를 잘 챙겨드리지 못했으니
퇴사하면서 엄마를 위한 시간도 계획했어야 했다.

기저질환이 많은 엄마는
코로나 확진으로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셨고,
누군가 옆에서 보살펴드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언니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어
결국 아빠가 하시던 일을 그만두고, 엄마를 돌보신다.

엄마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드리지만,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그 한계를 내가 감당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편찮으신 엄마를 보러 가는 일은
나의 퇴사 일상이 되었다.

엄마의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그동안 안부전화조차 자주 못 했던 게 사무쳐서

친정 오가는 길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


오랜만에 지하철 타는 것도 서툴러 헤매기도 했는데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갈아타는 역에서

몸이 자동으로 최적의 루트대로 움직인다.

서울에서 일산.

자주 다니니 꽤 먼 거리도 가깝게 느껴진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직장에 다녔으면 엄마와의 시간을 보낼 수 없었을 텐데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잃어버린 시간은 그 무엇도 보상해줄 수 없다.

퇴사해서 엄마를 살필 수 있으니

소중한 이 시간이 너무도 감사하다.


친정에 오자마자

쉴 틈 없이 일하는 딸이 안쓰러워

엄마는 울상이 된다.

엄마가 무척이나 드시고 싶어 하던

생선 조림을 공들여 본다.

엄마 손맛을 어찌 따라갈 수 있을까마는

오랫동안 먹어왔던 그 맛을 떠올려가며 양념을 가감한다.

엄마 입맛에 꼭 맞았으면 좋겠다는 일념 하나로 정성을 쏟는다.


엄마와 나의 역할이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고, 맛있게 먹는 모습에

기뻐하던 엄마를 떠올려본다.

이제 내가 맛있게 드실 엄마의 모습을 그리며

정성스레 식사를 준비한다.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막내가 집에 올 시간이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엄마, 아빠는 얼른 가라고 재촉하신다.


다시 엄마로 돌아갈 시간이다.


삼 남매와 엄마를 케어하며 엄마와 딸의 역할,

그 중간 어디 즈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오늘도 바삐 움직인다.


엄마이면서 딸로 살아가기.

1인 2역이 버거울 때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 외에도 또 다른 이름의 역할들이 있다.

좀 더 부지런해지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온전히 나로 살아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

틈틈이 숨을 고르며, 더 멀리 날아갈 준비를 한다.


엄마로 인해 딸이 되었고,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엄마여서, 딸이어서 참 좋다.

지금은 엄마와 딸 역할에 집중할 때,

후회 남지 않도록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본다.

힘들지만 이 또한 성숙해져 가는 시간.



모든 순간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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