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 - (4)
저는 바쁜 것은 좋아하지만, 일정에 쫓기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도적으로 바쁜 것은 아주 즐겨하지만 일에 휘둘리느라 분주할 때에는 오히려 제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건에 상관없이 최선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게 프로이고 그러기 위해 훈련을 하는 것이라면, 저는 여전히 전문가도 아니며 훈련이 덜 되었다는 말이겠습니다.
여러분의 오늘은 어떠실까요? 봄은 분주하지만 최고조에 이르지는 못한 긴장 속에 있는 계절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겐 아직 3월의 벚꽃 아래를 누빌 수 있는 작은 여유가 준비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을 누리는 데는 계층이 필요하지 말아야겠지만, 산천초목을 들이쉴 숨은 모두에게 공평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안타까워 저는 오늘 또 한 줄의 글을 적고자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 글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좋은 글은 끝까지 퇴고를 거듭해야만 겨우 한번 나올까 말까이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다작 중에 명작이 나오듯 이렇게 제 앞가림하기 바쁘게 사는 매일 속에 큰 기쁨이 하루쯤은 찾아오길 소망합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매일의 글 속에 불현듯 통찰이 찾아오듯 스스로의 자취에 큰 보람이 찾아올 날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은 기억과 기념의 기간입니다. 그러나 기념은 재현을 반드시 동반해야 합니다. 절기가 매년 돌아오는 이유는 모두의 한 해가 같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망각의 축복을 다소 아쉬운 방향으로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재현은 또다시 개혁과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거에 대한 무시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개혁은 새롭게 되는 것이지만, 탈피가 아닌 본질을 위해 고쳐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모든 말은 본질적인 것을 위한 기념과 재현을 상황화를 거듭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재현을 위해 개혁을 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루 또 하루가 새롭다는 노래가 저에게는 이렇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바쁜 매일 중에 본질을 잃어버린다면 일정에 휘둘릴 뿐입니다. 이것이 제게는 행복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남깁니다. 물론 저와 다른 생각이 틀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행복은 내가 행복하기로 선택하기는 일이기 때문에 정답이 없는 까닭입니다.
나치 정권에 맞서다 목숨을 잃으신 디트리히 본회퍼라는 목사님은 스스로 고난을 선택하며, 낮은 곳의 이들을 위해 교회가 성숙해져야 함을 제언하셨습니다. 이 성숙은 현실에 마주 선, 사람의 삶에 참여하는 동행의 여정이라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로써 죽었지만, 그의 선택은 명백한 재현과 기념이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사순절의 여정과 고난의 주간과 부활의 소망이 한데 담겨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가 피워낸 꽃을 참 아름답다 여겼습니다. 제가 닮고 싶은 또 생명이 취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저의 행복을 두었습니다.
당신이 피워낼 꽃도 분명 아름다울 것입니다. 꽃은 바람도 비도 그리고 햇살도 마음대로 부릴 수 없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해마다 재현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서로가 걸었던 삶이 겹치는 한 순간에 참 아름답고 향기롭다 말할 수 있는 사랑이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평안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