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육체, 뇌에 꽂힌 칩은 인간을 구원할까

트랜스휴머니즘의 도그마와 '유한함'이라는 숭고한 신비

by 광규

늙지 않는 육체, 뇌에 꽂힌 칩은 인간을 구원할까

트랜스휴머니즘의 도그마와 '유한함'이라는 숭고한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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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 섰을 때, 눈가에 새로 자리 잡은 잔주름이나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을 발견하고는 남몰래 한숨을 쉬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시간은 마음이 없어서 나를 기다려주지도 않고 매정하게 혼자 떠나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의 흐름이 육체에 새겨놓는 자연스러운 흔적들을 어떻게든 지워내려 애를 씁니다. 온갖 영양제를 삼키고, 노화를 늦춘다는 시술에 기꺼이 지갑을 열며, 젊음을 유지하는 것을 자기 관리의 최고 덕목으로 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다 건너 실리콘밸리의 거부들은 이제 노화 방지를 넘어, 아예 '죽음' 자체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이를 치료하겠다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에 마이크로칩을 심어 인공지능과 연결하고, 유전자를 편집하여 병들지 않는 육체를 만들겠다는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옵니다. 영원한 젊음과 초인적인 지능. 인류가 오랫동안 신화 속에서나 꿈꾸던 일들이 바야흐로 현실의 문턱에 당도한 것입니다.


트랜스휴머니즘, 육체를 초월하려는 오만

철학자 닉 보스트롬을 비롯한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의 지지자들은, 인간의 생물학적 육체가 지닌 한계를 과학 기술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눈에 늙고 병들며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우리의 몸은, 불완전하고 결함투성이인 '초안(Draft)'에 불과합니다. 과학 기술이라는 완벽한 편집기를 통해 진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마침내 '포스트휴먼(Posthuman)'이라는 새로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질병의 고통을 덜어내고 생명을 연장하려는 의학의 선한 분투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 그 자체를 소거해 버리려는 이 거대한 기술적 오만 앞에서는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짐을 느낍니다. 모든 생명이 마땅히 거쳐야 할 생로병사의 신비를 한낱 기술적 '오류'로 취급하는 세계관 속에는, 인간의 존재를 기계의 부속품처럼 환원해 버리는 지독한 허무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때로는 잘 늙고, 인생의 지나온 길을 잘 정리하는 일이 참 멋있다고 말입니다.


상처받을 수 있기에 비로소 열리는 세계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우리를 진정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치지 않는 강철 같은 육체나 무한한 정보 처리 능력이 아닐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가장 숭고한 아름다움은, 우리가 언제든 부서질 수 있고 상처받을 수 있는 '연약한 육체'를 입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피어납니다. 철학적으로는 ‘유한성’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흔히들 ‘한계’라고도 말합니다. 대부분 사람이 평생 이것을 뛰어넘고자 몸부림쳤지요. 그러나 사랑은 역설적인 것입니다.


내가 아파보았기에 타인의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내 생명이 언젠가 스러질 유한한 것임을 알기에 오늘 내 곁에 머무는 이 짧은 순간과 인연들을 눈물겹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슬픔도, 아픔도, 늙어감도 없는 매끄러운 영생의 세계에는 더 이상 타인을 향한 '긍휼(Compassion)'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한계가 사라진 인간은 필연적으로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고립된 신(神)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고통을 소거하려다 사랑하는 능력마저 거세당한 존재를, 우리는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흙으로 빚어진 우리의 남루함을 껴안기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시간의 풍화 작용을 겪어내는 우리의 몸은 결코 결함투성이 실패작이 아닙니다. 눈가의 주름은 당신이 그토록 많은 날들을 곁에 있는 이들과 다정하게 웃어주었다는 눈부신 기록입니다. 거칠어진 손마디는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당신이 치러낸 거룩한 노동의 흔적입니다.


기계와 데이터가 영생을 약속하며 우리를 유혹하는 이 차가운 황혼기에,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가 육신의 유한함을 서러워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오늘 하루가 기적처럼 눈부시고, 언제든 부서질 수 있기에 우리는 서로를 조심스레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늙지 않는 차가운 금속 보다, 주름지고 병들지언정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이 따뜻하고 남루한 살결이 저는 참으로 좋습니다. 우리의 한계는 저주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게 만드는 창조주의 가장 다정한 안배일 테니까요.



[다음 글 예고] 인간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으려는 끝없는 탐욕은, 결국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푸른 별을 위태로운 시한폭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제4부의 마지막 이야기인 12화에서는 브뤼노 라투르의 생태 철학과 함께 묻습니다. "우리가 딛고 선 지구라는 시한폭탄." 인류세(Anthropocene)의 도래와 생태 위기, 그리고 이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 생명들이 공존할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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