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잘 살고 싶어
서울 강북에서 경기 북부 파주로 이어지는 자유로는 난이도 중간 정도의 스릴 넘치는 도로다. 널찍한 8차선 고속도로에는 잊을만하면 완만한 커브가 나타나고, 일산과 파주 어디로든 이어져 있어-잘못하면 지구 반대편인 판교로 가는 수가 있지만-유동적인 드라이브 코스를 짜기에도 좋다.
파주로 출퇴근을 할 적에 가장 높은 장벽은 출퇴근 그 자체였다. 통근 버스에 앉아 있으면 눈앞에 누군가의 엉덩이가 보이거나, 내가 누군가의 시야를 가리는 엉덩이가 되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무엇보다 질주하는 버스 덕에 어릴 때 사라진 멀미를 다시 느껴 아침저녁으로 곤란할 때가 많았다. 창백한 얼굴로 출근하는 신입(심지어 지각)을 보며 ‘쟨 얼마나 회사 오기 싫으면 저럴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쯤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은 늦은 시각까지 야근을 하고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 하나뿐인 편의점은 종종 저녁에 문을 닫았고 앱으로 음식 배달이 보편적이지도 않을 때였다. 집에 가면 아홉시가 훌쩍 넘을텐데… 그때의 나는 체력과 열정이 넘쳤던 만큼 요령도 없었던 것 같다.
퇴근 시간을 넘긴 한적한 도로에는 간간히 일산으로 오가는 녹색 버스만 지나다녔다. 택시는커녕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맞은편 쇼핑센터는 불이 꺼져있었고 가로등 말고는 하늘에 뜬 별이 전부였다. 나는 그런 풍경을 알고 있었다. 어릴 적, 늦은 밤 산에 가면 가로등 하나 없어도 눈이 부실 정도로 하늘을 가득 메운 별과 달을 볼 수 있었다. 적당한 곳에 누워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말을 실감했고, 그땐 그런 평화가 영원할 줄 알았지… 문득 별을 보기 위해 밤 산책을 나간 게 까마득하다는 걸 알았다. 이게 사는 건가, 밥도 못 먹고. 도착 시간을 넘긴 버스는 언제 올지도 모르겠는데.
그곳에 머물 때 유달리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멀쩡히 어른 행세를 하며 살아가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기에 난 철이 없고, 출퇴근 길은 험난했다. 백수 시절의 한가함, 오지 않을 버스에 발을 구르지도 않고 기약 없이 지속되는 일상에 지루할 새 없는 스릴이 그리웠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창작을 하고 싶었다. 그땐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전이라 내가 정확히 뭘 하고 싶은지는 몰랐지만, 무언가 하고 싶다는 건 알았다. 뭘 먹을지 모르겠다고 해서 배가 부른 건 아니듯이.
시간이 한참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배고픔과 추위, 스멀스멀 올라오는 분노로 이성도 퇴근하려는 것 같았다. 맞은편 건물 너머 희끄무레한 안개가 자욱했다. 이른 아침과 저녁, 그곳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게 바로 안개였다. 무진의 여귀처럼 한이 서린 그런 건 아니지만 블러처리 된 이미지처럼 주변 풍경을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길 한복판에 <사일런트 힐>에 나오는 피라미드 헤드가 서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풍경. 좀비 영화의 배경일 것 같은… 왜 파주에서 공포영화를 찍지 않을까? 주중에만 오가는 노동자들, 텅 빈 도로, 인적이 드문 모던한 골목길 너머 북한으로 이어진 고속도로… 그곳 어느 건물 지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방공호가 있는 건물이 어딘가에 하나쯤 있지 않을까? 호텔이라든가, 물류 창고라든가, 미술관, 쇼핑센터, 혹은 아스팔트 도로 아래 어디든…
이런 상상들은 퍽퍽해지는 삶에 적당한 윤기를 돌게 만든다. 이유를 알 수 없이 패인 도로 바닥이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돌아다니는 용의 발자국일수도, 투명 망토를 두르고 인류의 이해를 벗어나는 존재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수도 있다. 혹은 밤마다 저수지에 출몰하는 유니콘을 보러 가는 초보운전자가 있을수도 있고.
결국 정류장 표지판에 적힌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한참 후에야 전화를 받은 직원은 버스가 오지 않는다는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기사들이 파업 중이니 오늘 운행은 끝났어요.”
뭐라구요? 그럼 전 집에 어떻게 가요? 직원은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회사에 기사가 한 명도 없으니 불만이 있으면 시청에 전화하라는 것이었다. 저기요 지금 저녁 7시가 넘었는데요…. 나는 뭐라도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다른 버스는 없나요?”가 전부였다. 빛이라고는 도로에 켜진 가로등 뿐, 지나가는 차는 한 대도 없고 버스는 오지 않을 거라니… 그때 나를 포함해 정류장에 있던 사람은 세 명. 내 통화를 들은 사람들이 말없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누군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저기… 택시 타실래요?”
운 좋게 택시를 잡고 부지불식간에 만난 세 사람은 이후에도 종종 퇴근 메이트가 되었고 그때 만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절친이 되었다…면 재밌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의 신상과 안부를 묻기에 그날 정류장에서 만난 셋은 너무 피곤했다. 나는 택시로 처음 이동하는 자유로에서 폭풍같은 멀미를 했다. 한 마디라도 하면 입밖으로 토가 튀어나올 것 같아 최대한 숨을 참고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멀리 임진강변의 수면이 도시의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어떤 풍경은 자리나 시간, 동행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수십 번 본 같은 풍경이 단 하나의 조건만 달라져도 그곳은 완전히 새로워진다. 나중에 그 풍경을 운전석에서 바라보게 될 줄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채.
무사히 합정에 도착한 뒤 셋은 택시비를 나눠 내고 각자의 방향으로 돌아갔다. 인사라도 할 걸. 그게 벌써 십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 ‘이럴 때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실제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뒀으니까. 사람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하지만 일 하기가 너무 싫다. 아직 적성인 일을 찾지 못해서일까? 그런데 일이 적성인 사람도 있나? 있겠지. 적성과 행복이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사람들… 난 아직까지 그런 일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소설을 써서 돈을 버는 일도 생각해 봤다. 소설을 써서 돈을 번다는 건 책을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 창작자가 되어 전업이 가능한 정산을 받는건데, 그런 면에서 난 아직 아마추어다.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인세도 받아본 적 없다. 어떻게 하면 인세로 먹고 사는 작가가 될까?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면 졸음이 밀려오고 눈이 침침해지는 게 뇌가 거부하는 것 같다. 마치 헬스장에서 스쿼트를 60개쯤 하면 졸음이 밀려오고 급격하게 피곤해지는 것처럼(몸에 근육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과한 운동은 램수면 상태와 구분하지 못하고 돈 버는 일에 대해 난 근육이 없나 봐… 소설도 운전도 인생도 다 초보다. 다 서툴고 어려운 일 뿐이다. 대체 언제까지 초보여야 할까? 초보는 지겹고 초보는 가난하다. 초보는 무지하고 초보는 뻔뻔하다. 초보는 부끄럽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럼에도 초보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다.
언젠가 사주를 봤을 때 ‘그릇이 작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머리는 똑똑한데 게을러서 서울대를 가지 못했다나. 게으르지도 않고 그릇도 지금보다 컸으면 더 나은 내가 됐을까? 그런 나는 어떤 나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나의 한계를 가두고 작은 그릇 안에서 만족하는 삶. 근데 그게 나쁜가? 어디든 적당한 그릇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 자신 몫의 그릇을 찾는 일만으로 평생을 쓰는 사람들의 삶을, 나는 더러 알고 있다.
소설을 쓰고 싶다. 나를 잃지 않는 노동과 일상을 유지하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 생의 에너지를 가득 채우는 감각-운전 같은-을 느끼고 싶다. 더 잘 살고 싶어, 더 잘 쓰면서! 그 모든 걸 다 하고 싶다. 아직은 잘 되지 않는 것 같지만. 우선 운전을 더 잘 하고 싶어. 오늘을 잘 살고 싶어. 오늘은 잘 지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