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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트 Mar 15. 2022

사고와 결말

렌터카타고 사고난 썰



친구에게 요즘 에세이를 쓰고 있다고 했더니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에세이에서 작가가 선을 넘는 얘기를 하는 게 좋아. 선을 넘을까말까 망설이는 그 순간이 보이는 글 말이야.”


그리고 예를 든 몇몇의 작가를 떠올리자 과연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을 넘는 글이라니.


사실 나는 그게 무섭고 싫어 소설 쓰기를 선택했다. 소설 속에서 나는 안전하다. 내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플롯과 서사 안에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처럼 정말로, ‘무엇이든 가능하다’, 소설 속에서는.


그러나 조금만 쓰다 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말은 ‘내가 쓸 수 있는 한에서’라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쓸 수 있는 것, 알고 있는 것, 알고 싶은 것. 작가의 깜냥이랄까, 아무리 장대한 플롯으로 시작해도 결말을 쓰기 전까지, 혹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까지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작가는 모르면서 쓴다. 네비게이션 없이 처음 보는 길을 달리는 운전자처럼. 길의 끝에 터널이 있는지 교차로가 있는지, 아무런 표지판도 없는 곳에서. 그래서 재밌고, 그래서 괴롭다.


선을 넘을까말까, 나는 언제나 고민한다. 대게 그 고민은 마감이 오면 후순위로 밀려난다.

선을 넘거나 말거나, 가장 중요한 건 정해진 날까지 무언가 써내는 일이다. 결국 나는 결말을 먼저 정하고 마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날거야, 마치 거짓말로 만들어낸 인생처럼 내 이야기의 한계를 지어버린다.

무서워서, 틀릴까봐, 늦을까봐, 모두가 날 비난할까봐.

아무도 이 결말에 관심 없는데.



딱 한 번 렌터카를 타다 사고가 난 적이 있다.

건물 주차장에서 빠져나갈 때였다. 주차장 입구는 2차선 비보호 도로 앞에 있었고 내가 빌린 차는 k3였다. 그때까지 k3에 대한 내 인상은 무척 좋은 편이었다. 첫 차를 산다면 이걸로 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세단의 매력에 빠져있던 나는 무엇을 주의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전까지 소형차와 경차를 몰던 경험이 전부였기에, 생각보다 긴 k3의 앞 범퍼를 가늠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좌회전을 하다 도로 옆 외벽에 차를 박아버렸다. 이빠이 핸들을 더 돌렸어야 했는데! 대체 그때 무슨 생각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 생각도 안했던 것 같다.


온갖 욕과 상스러운 비난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대여할 때 보험은 잘 들었던가? 정말 보험만으로 괜찮나? 오늘 일정은 어떡하지? 근데 왜 차는 안 빠져? 차가 폭발하면 어떡하지? 차도에서 나가도 되나? 맙소사 왜 이렇게 박은 거야(마치 외벽에 꽂힌 젓가락처럼 비스듬하게)! 렉카를 불러야하나?

그래, 렉카를 부르자! 나 혼자 이걸 해결할 순 없어…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나는 이제 운전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짧은 운전자의 생애가 끝나는구나…

마지막으로 몬 차일지도 모르는 k3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N의 망상을 지구 끝까지 펼치던 그때, 도로 옆에서 담배를 빼물던 한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차 빼줄까요?”


아저씨는 한 손에 담배갑을 든 채 운전석으로 다가왔다. 나는 범퍼를 살피다 운전석을 살피다 우왕좌왕하느라 아저씨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얼어붙은 내 얼굴을 본 걸까?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키더니 액셀 한 번 밟는 것으로 벽에 박힌 차를 후진시켜 빼냈다.


“천천히 해요, 천천히.”


그러고는 유유히 운전석에서 내려 자신이 있던 도로로 돌아갔다.


그때 내 마음속에 가출했던 인류애가 씨앗을 심고 순식간에 땅 위로 솟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할렐루야 아멘! 이럴때만 믿어서 죄송하지만, 신이 보내준 귀인이 확실했다.

초보운전의 신이 카쉐어링 회사와 싸우지 말라고 나에게 은총을 내렸다고 밖에는…!

아저씨는 별 일도 아니라는 듯 원래 있던 자리에 서서 담배를 입에 물고 고개를 몇 번 끄덕거렸다.

마치 ‘그 정도는 별 일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말한 뒤 시동을 걸고 도로를 빠져나갔다.



사고는 빠르게 해결되었다. 누가 다치지도 않았고 보험은 최대치로 보장됐으며 1일 휴차료(사고 등으로 렌터카가 영업 불가 시 청구되는 금액)가 합해 청구된 금액은 예상보다 저렴했다.

렉카를 부르지도 않았고 우측 헤드라이트 윗 범퍼 부분이 조금 찌그러진 차는 수리 후 다시 대여 상태로 바뀌어 그 자리에 들어왔다. 사고 나는 데 1초, 차 빼는 데 5초, 고민한 시간 백만 년…

그 날을 기점으로 ‘초보운전자 하이’ 상태는 급속도로 추락해 이제 나는 어떤 차를 봐도 심박수가 100 이상 높아지지 않는다. 사브 900정도가 아니면…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간신히 잠재워놓은 나의 초.보.하를 깨워놓지만 않았다면…



서사 안에서 나는 안전하다. 그곳에서는 예상치 못한 사고나 비극은 일어나지 않는다. 모두 ‘내가 정한 사건’만 일어날 뿐이다.

서사 안에서의 사고는 논리적이고, 결말을 위해 정해져 있으며, 사고를 겪은 인물들의 내, 외면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 정해진 운명을 유려하게 만들어내는 일에 오랜 시간을 쏟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잘 깎인 유리 세공품의 표면처럼 완벽하다고 생각한 서사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너무 매끄러운 서사는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불완전하다고 할까.

나를 내보이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닐까?

예측하지 못한 좌회전 충돌 사고처럼 어떤 서사는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나는 간신히 서사의 꽁무니를 따라갈 때도 있다.

틀리면 어쩌지? 잘못되면 어쩌지?

내가 걱정하거나 말거나, 그곳에는 담배를 입에 문 처음 보는 아저씨같은 존재가 있다. 그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이 이야기의 끝을 맺게 해달라고.

그리고 결말이 드디어 나를 본다. 낯설지만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로.

내가 그를 알았는지는 아무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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