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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트 Mar 11. 2022

운전 하는 여자들

나와 여자와 운전자들




숙모는 내가 만난 최초의 여성 운전자다. 그가 몰던 티코는 놀랄만큼 깜찍한 외관과 효율성, 그에 반비례하는 휴지짝같은 안전성으로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무시무시한 차였다(충돌 사고라도 나면 뒤집힌 벌레처럼 도로에 널부러진다는 소문이 도시 괴담처럼 떠돌았다). 숙모는 훌륭한 니터이기도 했다. 차 내부에는 손수 뜬 흰색 레이스가 헤드레스트부터 기어 손잡이까지 가득해, 나는 오랫동안 베이지색 니트 시트가 자동차의 기본 옵션인 줄 알았다.


경차에 대한 우려와 상관없이 숙모는 흰색 구형 티코를 십오 년쯤 몰았다. 그 사이 시트의 레이스 무늬는 네 번쯤 바뀌었고 공업사에 가는 것보다 폐차하는 게 더 싸게 되었을 무렵 나는 그곳에 없었다. 숙모는 내가 어릴 적, 여자의 직업이 주부 아니면 선생님 뿐이라고 알던 때에 만난 최초의 ‘일하는 여자’이기도 했다. 그가 이른 아침 집을 나가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차가 필요하다는 것, 내가 그를 알기도 전부터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는 당시 내 전 생애인 7년 정도를 할애해야 했다.     


 번째로 만난 여성 운전자는 나의 첫째 이모로, 그의  차인 프라이드 때문에  또한 프라이드에 대한 설명하기 어려운 향수가 있다.


30 초반에 면허를   운전을 시작한 이모는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도로에서 퓨리오사를 능가하는 분노의 드라이버가 됐다. 이모의 프라이드는 이름처럼 프라이드가 높아, 자신 앞에 끼어드는 어떤 차도 곱게 용납하지 않았다.


한번은  차선에서 이모 앞으로 추월하려는 트럭과 싸움이  트럭을 따라간 적도 있다. 트럭은 칼치기로 끼어들면서 프라이드의 진로를 방해했는데, 마침내 트럭이 이모의 프라이드를 추월해  차선으로 들어왔을  하마터면 이모는 트럭의 번호판에 범퍼를 박을  했다. 트럭은 이모를 추월해 저만치 나아갔지만 이모의 분노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모는 그때, 이전에 수없이 겪었던 프라이드에 대한 무시와 분노가 폭발했던  같다. 어떤 운전자들은 소형차에 무례했고 소형차를 운전하는 여자에게는  무례했다. 운전을 하면서 이모는 개썅년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고 나중에는 개썅년이 뭔지 보여주는 사람이  것이다.


트럭을 따라간 이모는 어느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차창을 열고 소리쳤다. 운전  따위로 하지 마라!” 후방 카메라 없이 운전하던 시대에 면허를  이모는  말이 끝나자 빛의 속도로 골목을 후진해 빠져나왔다.


프라이드 운전자가 자신을 따라온 것도 모자라 차창을 열고 충고를 날렸을  트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적어도 다신 프라이드를 얕보지 말아야겠다고, 함부로 끼어들어 진로를 방해하면 위험하다는  안다면 좋을텐데.


 얘기를 듣고 나는 사고가 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대체 무슨 생각이었냐고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이모, 제발 그러지 좀 마세요. 무섭지도 않아요?”
“개-좆같은 새끼가 운전을 그따위로 하니까 그렇지!”


이모는 좋아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평소처럼 태평하게 말했다.  후에도 이모는 수십   정도의 -좆같은 새끼들을 만났다. 그들은   골목에서, 교차로에서, 우회전 차선에서, 비보호 좌회전 도로에서 잊지도 않고 튀어나왔다. 그럴수록 이모의  번째 자아는 나날이 강력해졌다.


운전석에 앉을  튀어나오는 이모의  번째 자아는 다소 거친 편이지만, 사실 나는  여자를 응원하고 있다(지금 내가 아는 욕의 절반 정도는 모두 이모의  번째 자아에게서 배운 것이다).


평소의 이모는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인상적인, 온화한 인상의 소유자로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몫을 다하는 훌륭한 사회인이다. 그런 그를 퓨리오사로 만든 도로와 세상이 잘못했겠지 이모의 잘못은 없다.

다신 프라이드 무시하지 마라, 탑차여.  




레트로한 모습이 오히려 미래적인(?) 구형 프라이드의 모습. Photo by 위키피디아




 사람들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일하는 여자들이 운전하는 것에 로망이 있다.  또한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아직 운전하는 여자, 아니 자차 모는 여자는 되지 못했다. 차를 갖고 싶다.  마음을 완성하기 위해 감당해야  많은 현실적인 문제를 나는 지나칠 수가 없다.


어떻게든 오너 드라이버가 되었다고 치자, 유지비는? 세금은? 정기 점검과 소모품, 관리는 어떻게  것인가? 관리의 영역을 지나면 주차라는 최대 난간이 기다리고 있다. 차를 사는 것도 , 갖고 있는 것도 , 타지 않는 시간 동안 보관하는 것도 돈이다. 내가 원하는   들어주기에 한쪽의 나는 철이 없고 한쪽의 나는 너무 지쳤다.

 사이에서 운전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내가 있다.     


나이가 들고 각자 일을 하며 자차를 모는 친구들도 생겼다. 운전하는 친구가 있다는  약속 장소의 범위가 시내에서 외곽의 드라이브 코스로 넓어질  있다는 가능성을 포함한다. 물론 그들이 자신의 차에 친구들을 태우고 멀리 이동하는  당연한 일이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 비운전자로 살며 친구들의 호의와 애정 덕분에 멀리 가서 놀았다.  지는 바다로, 눈이 오는 산으로,  오는 저녁의 시내와 레스토랑, 커피숍, 외딴 곳에 홀로 문을  도넛 가게와 카페오레, 고양이, 귤나무, 환상적인 노을의 풍경과 별이  산등성 같은 풍경을 보고 맛보았다. 혼자였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다정하고 선연한 감각들.

나의 20 경험의 오할 정도는 친구들의 운전에 빚을  것이다. 그들의 곁에서, 조수석에서.



킴도 나처럼 조수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었다. 몇 년 전 집에서 30킬로미터 쯤 떨어진 외곽에서 일하게 된 뒤 킴은 곧바로 면허를 따고 차를 샀다. 짙은 남색의 중고 크루즈였다. 지금은 단종된 쉐보레 크루즈의 캐치프레이즈는 ‘섹시 앤 스마트’. 어딘가 90년대 미드같은 카피 같지만 나는 그게 킴과 꽤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킴의 차를 타고 우리집으로 간 적이 있다.

“좌석 괜찮아? 엉뜨 틀어줄까?”

가히 세기의 발명품  하나인 운전석 시트의 ‘엉뜨 사랑하지 않을  있을까(나와  친구들은 엉덩이를 따뜻하게 하는 ‘엉따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대둔근부터 햄스트링까지 뜨끈뜨끈하게 지지는 ‘엉뜨(엉덩이를 뜨뜻하게)’ 선호한다).


나는 킴의 조수석에 앉아 언젠가 나도 누군가를 이렇게 데려다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소망했다. 안전하고 빠르게, 낯선 도로를 달려 어떤 어둠이라도 가를  있도록. 내가 아는 운전자들이 나에게 알려준 안전과 행복을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전할  있다면, 함께 안정을 공유할  있다면. 킴이 틀어준 엉뜨처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집과 일터를 오가던 숙모의 티코처럼, 원하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던 나의 이모와 지금은 사라진 구형 프라이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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