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벽지
이사 나가야 하는 날짜와 새로 이사 들어갈 날짜가 같은 날이어서 도배도 미리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살지 싶었는 데 자꾸 눈이 간다.
벽지 곳곳에 구멍이 있거나 땜빵이 되어 있거나 손때가 묻어있거나 얼룩이 져있다.
도저히 안 되겠다 하고 도배를 결심했다.
“살면서 도배”를 하기로 결심했다.
살면서 도배는 기본 견적부터 비싸다.
기왕 하는 거 카페에서 자주 들어봤던 벽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역시 자주 듣거나 알게 되면 유혹에 휘말리게 된다.
소비에 있어서 모르는 게 약이기도 하다.
웨딩 체크리스트 작성할 때 다른 사람 후기 읽다가 체크리스트가 100개가 넘고 비용이 계속 추가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벽지에 대해 1도 모르던 나는 LG 디아망에 대해 알게 됐다. 회벽 화이트 PR002-01. 회벽 화이트와 퓨어 화이트가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마침 내가 LX 하우시스 매장에서 마음에 들어 사진 찍어뒀던 것이 회벽 베이지였다. 회벽으로 결정! 또 실크벽지로 도배를 하면 이틀 정도는 창문도 열지 않는다는 상식도 알게 되었다.
이전 집 도배해 주셨던 사장님께 부탁드렸다.
도배날!
난 출근하고 엄마가 집에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집이 환하게 변해있었다.
그런데 먼가 굉장히 습하다.
또 공기가 좀 뿌옇다.
중요한 사실. 냄새가 난다.
맙소사. 무언가가 탔다.
아니. 냄비가 아직도 타고 있다.
도저히 뚜껑도 못 열겠다.
엄마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했다.
우리 엄마는 이모와 산책 중.
엄마가 냄비에 낙지 머리 4개를 끓여 넣고, 이모가 엄마를 재촉하자 엄마가 그 사실을 잊고 밖에 나갔다고 한다.
나에게 냄비를 복도에 내놓으라고 한다.
그렇게 나의 집은 탄 낙지 머리 냄새로 가득 차고 말았다.
배운 게 있어 창문도 열 수 없다.
저녁을 밖에서 먹고 돌아왔지만 냄새가 여전해서 엄마가 피신을 가자고 했다.
그 냄새가 너무 지독하다며 그렇게 밖에서 몇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동안 이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후부터 창문을 열고 방마다 양초를 피워놓아도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것인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불에 올려놓고 자주 깜박하는 우리 엄마는 옛날부터 여러 냄비를 태웠었다. 종종 집에서 탄 냄비를 껐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엄마는 가스레인지를 인덕션으로 바꾸었다. 그리곤 시간을 설정했다. 그 이후로 엄마가 무엇을 태웠던 기억은 잘 없다.
다음에 엄마를 위해 우리 집에도 인덕션을 마련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