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선언#1

This is not a love song?

by 썸머

나 결혼해


주변인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아직 20대, 주변에 결혼한 친구 없음. 우리 중 가장 먼저 결혼하게 될 사람이 너라니, 믿기지 않는다는 말이 쏟아졌다.


지금의 애인을 만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미래를 같이 그리자는 이야기를 나눴을 때 나는 주변인들을 상대로 결혼설문 순회를 다녔었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고 다짐하는 것의 결론이 왜 꼭 결혼이 여야 해? 도대체 그게 뭐길래.


순회가 끝나고 결혼을 결심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떠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할 수도 있겠다. 사실 '결혼 결심' 같은 것을 한 일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주변인들에게 결혼을 할 것이라는 말을 건네며 애인에게 나의 가족을 소개하고, 애인의 가족을 소개받았다. 함께 살 집을 알아보고 대출을 받고, 혼인신고를 마쳤다. 애인과 나는 현재 법적인 부부로, 이별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페미니즘의 도전


활동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일을 하며 만난 동료들은 대부분 페미니스트들이었다.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에 예민한 이들이었고 그중 많은 수는 이성애가 아닌 성적 지향을 갖고 있었다. 페미니스트이자 퀴어이자 대부분 가난한 나의 동료들은 결혼을 가부장제의 산물 혹은 다른 행성의 일, 아니면 '동성혼 법제화'라는 쟁취해야 할 결과물로 여겼다.


나의 20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를 이성애자라고 확신했던 적은 한 번도 없을뿐더러 여성과든 남성과든 결혼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은 없다. 비혼 페미니스트들 간의 연대를 꿈꿨고 결혼이라는 형태가 아니더라도 가족을 만들고 공동체를 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리면 설레기도 했다.


결혼을 욕망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상에서 벗어나 있을수록 정상을 욕망하는 법. 현실적인 결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아니었지만 '결혼'이라는 함의하는 특정한 이미지를 상상해 본 적은 있다. 수업시간에 몰래 소설책을 읽는 학생마냥 누가 볼까 주위를 살피며 종종 상상했다. 어딘가 민망하긴 해도 사실이다.


결혼과 비혼 사이


비혼 페미니스트 꿈나무는 왜 '새댁'이 되었을까? 여성동지들과의 성평등 마을을 건설해도 모자란 시기에 어쩌자고 남성과 결혼을 했을까?


페미니스트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비혼 혹은 결혼 불/가능성을 이야기했던 '나'와 애인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결혼하게 된 '나'는 같은 사람이다. 물 흐르듯이 한 결혼이지만 (이미 혼인신고까지 한 마당에) 나는 나를 설득하고 있다. 이것은 소설책이 아니라 교과서다, 이것은 소설책이 맞지만 네가 수업시간에서까지도 읽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이것은 교과서에도 수록된 소설책이다, 고전문학 같은 것이다, 어쩌구 저쩌구.


횡설수설한 설득은 불안감의 반영이었다. 결혼제도는 가부장제의 산물이라는 목소리, 집을 구할 돈이 없어서 마음이 있어도 결혼하지 못한다는 목소리, 동성혼 법제화는커녕 차별금지법도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들이 결혼을 한 내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나의 결혼선언이 소중한 동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도 느꼈다. 나의 결혼이 누군가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이들의 온전한 이해를 받고 싶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국가의 복지정책이 이성애 기혼자 중심으로 설계되었다는 비판을 늘어놓던, 국가의 용인을 전제하는 결혼이라는 법적 제도가 가부장제와 어떻게 맞닿아있는지 고민하던 장면, 동시에 생활동반자법이 아닌 동성혼 법제화가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 떠들어댔던 시간, 원가족이 아닌 내가 선택한 나의 가족구성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안정에 대한 욕망, 결혼이 하고 싶어도 각각의 이유로 할 수 없는 동료들에게 드는 미안한 마음까지.


결혼과 비혼 사이,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미래를 함께 계획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결정을 내리기에는 설명이 필요한 내 안의 모순이 가득했다.


비혼 페미니스트, 결혼하다. 현실과의 타협일까? 결혼이 뭐길래 나는 결국 이 길을 선택했을까? 모름지기 후회는 일을 저지른 뒤에 올 수밖에 없는 것. 혼인신고까지 한 마당에 속 시원하게 써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