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대학원 도전 일지 4
대학원 개강 3주차가 되었다.
아직은 더 다녀봐야겠지만 짧은 시간에도 분명히 느끼는 바가 있기에, 지금 시점에 내가 얻고 있는 대학원 생활의 가치에 대해 정리했다.
IT 특화 과를 선택하기보다 MOT를 선택한 이유에는 다양한 산업군과 직업의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교류하고자 하는 목적이 컸는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야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계기가 될 정도로 그 목적에 맞는 분들과 동기가 되었다.
IT 업계에만 갇혀있던, 그래서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데이터 분석가, 세일즈 직무의 사람들과만 소통하다가 투자자, 공공 기업 종사자, 선박 엔지니어 등 다양한 분들과 교류하다보니 내가 지금의 분야에만 갇혀있을 필요도 없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의 분야에 충실하면서 전문성을 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는 길이 한층 확장된 것처럼 느껴져서 커리어 확장에 대한 욕심으로 조급했던 마음이 한층 여유로워진 것을 느끼고 있다.
대학원에서는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알려줄 수 없는 지식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지식에 포함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론 체계에 걸맞는 교수님들의 경험이다.
대부분 조직에서 한 자리씩 하다가 나온 분들이라 특정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셨는데, 그 중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시는 부분에서 큰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단어를 일상 속에서도 쓰지만 사실 이 단어는 사람들의 믿음, 가치관, 세계관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의 패러다임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기에, 그 이전의 패러다임과 양립할 수 없는 공약불가능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천동설을 믿던 사람들이 지동설을 믿기 어려워했던 것처럼, 특정 패러다임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는 면이 있다. 때문에 우리가 기업에서 일할 때에도 세대 차이가 많이 나는 조직장과 의견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도 비슷한 결이라고 설명하셨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야할 건 패러다임과 패러다임을 통역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까지 전달주셨다. 이렇게 내가 겪고 있는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적 체계를 많이 배울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직장에서의 좋지 않은 기억들이 많이 완화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었다. 사실상 위 내용의 총정리 감정 같은 것이 되겠다.
올해 3월은 일에서 의미를 많이 찾는 나에게 힘든 시기가 되고 있다.
많은 교류를 통해 내가 잘 따르고 있던 리더 분이 갑자기 다른 분야로 도전하러 가시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일단 상위 리더 분이 겸직을 하시게 되었다.
문제는 그 상위 리더 분이 지금까지 우리 조직이 하던 일에 공감하지 못하고 계셨단 것을 인수인계 회의에서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올해 이 조직에 계속해서 있는 것이 맞는지, 하다 못해 팀 이동이라도 부탁드려야 하는 건지에 대해 고민하던 시점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금요일을 보내고 토요일 새벽부터 일어나 대학원에서 여러 수업을 듣고 동기들의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 미래가 단순히 이 회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되고, 어떤 사람의 생각 구조에서 파악할 수 있는 단서도 찾게 되었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던 일련의 상황들도 이해와 공감이 되었다.
많이들 하는 이야기지만 일과의 관계는 마치 연애와도 같아서 어느 정도의 밀당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여러 이벤트들이 쏟아지다보니 그 완급 조절에 실패한 시기였는데, 어찌보면 새로운 관계가 하나 더 들어와서 어느 정도 밸런스가 맞춰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