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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월령 Apr 06. 2024

자유는 누릴 수 있는 사람만 누린다

       자유란 무엇인가. 지금은 오후 5시 46분, 혼자 카페에 나왔다. 여느 때와 같이 집에서 작업을 하려는데 오늘따라 집중이 어려웠다. '무엇이 문제인가.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가?'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장소의 문제인가 싶어 밖으로 나가보기로 한다. 봄비가 내린다. 머리 위에선 비가 쏟아지는데 이상하게도 저 멀리의 하늘은 밝았다. 짧게 내리고 그치는 걸 보니 소나기 인가 보다.


카페에 도착해 가장 좋아하는 음료인 아인슈페너 초콜릿과 오늘은 특별히 티라미수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꺼내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려 하니 프로그램과 작업물이 들어있는 외장하드를 두고 왔다. 하... 작업하긴 그른 날인가 보다.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 MBTI가 INT'P'임에도 일할 땐 계획이 어긋남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평소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계획이 틀어진 김에 다른 일을 하면 되는, 딱히 무엇을 해도 상관없는 지금이 꽤 자유롭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갑자기 글을 쓰고 있다. (스트레스는 조금만 받았다.)




자유란 무엇일까. 여기서 멋지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자유시장경제에 대해 연설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관련 지식이 짧아(사실은 없어서) 언급할 수 없겠다. 다음에 책을 사서 읽어보기로 하고, 이런 자극적인 글 제목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 것인가. 사실은 몇 달간 고민했다. 글을 적을 때엔 보통 말하고 싶은 내용의 핵심 주제를 미리 제목으로 적어두고 머릿속에서 잘 정리한 후 적어나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잠깐 어투에 대해서 첨언하자면 그나마 최대한 시니컬하지 않게, 둥글게 둥글게 다듬는다고 신경 쓰는 게 이 정도다. 항상 내 글을 읽으며 마음 한편이 불편한 분들이 계실 것이다. 꼰대 같다고, 이미 주변에서 그런 피드백도 많이 받고 있다. 글을 적을 땐 최대한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득력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야겠지만 앞으로도 내 글은 다정함을 찾아보기엔 글러먹은 상태일 테니 미리 사과를 드려야겠다.


여하튼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느 날 불현듯 떠오른 문장인데 글 제목과 같이 <자유는 누릴 수 있는 사람만 누린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혹은 <사이코패스/우월주의자>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엔 꽁꽁 감추어진 세상의 비밀을 알아낸 듯한 기분이었다.


혹시 졸업 후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극단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돌이켜보면 학교란 타인에 의해 시간이 철저히 통제되던, 일부의 자유가 박탈된 곳이다. 그러니 인터넷상에서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 떠돌지 않겠나.


물론 젊었던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는 정도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다들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이 다시 교도소에 돌아가고 싶어 또 범죄를 저지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심지어 군대에 다시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난 인생에서 군시절이 가장 힘겨웠는데 말이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를 보면 대체 어떤 사고 과정에서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참 궁금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사 직후 금전적 여유가 있어도 잠깐 쉬다가 다시 불안감이 덮쳐와 곧바로 일자리를 찾아본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과거 통제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대체 왜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내가 생각하기로 자유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자유를 갈망하지만 자유를 두려워한다. 본인이 선택하고 따라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 결과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한다. 불안을 견딜 수 없으니 누군가가 선택을 대신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책임과 불안을 타인 혹은 시스템에 전가하는, 조금은 무책임한 모습으로 보인다.


누군가 '저런 이야기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사실 이 글을 적고 있는 나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나는 요즘도 가끔 알바 자리를 찾아본다. 왜냐고? 음악으로 먹고 살만 하다지만 수익이 일정하지 않고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정산금이 많이 들어올 때도 있지만 간혹 적게 들어올 때면 항상 불안감이 눈앞을 가리게 된다. 그럴 때마다 당당했던 어깨는 움츠러들고 당장 쿠팡 물류센터에 나가서 일하고 싶은 심정이다. (물류일을 폄하하는 것이 절대 아님을 짚고 넘어간다.)


경제적 자유가 모든 자유를 대변하진 않겠지만 최소한의 기준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나마 내가 이룰 수 있는 경제적 자유의 자그마한 실마리는 음악이었다. 그게 노동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이 초조해질 때면 알바에 잠깐 한눈팔았다가 돌아와서 또 엄청난 작업량으로 불안감을 해소하곤 했다. 음악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온전히 자유롭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과연 완전한 자유란 존재할까? 누군가는 누리고 있을까?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선택과 책임에 대하여 한마디. 요즘 경향을 보면 사람들은 사소한 무엇 하나를 하는 데에도 확신이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가 먹을 것도 <결정 장애>라며 잘 못 정한다. 무엇을 시작하기 전엔 이거 물어보고 저거 물어보고 끝이 없다. 끝없는 질문과 검색만 하다가 기운을 다 쓰고 하루를 보내버린다. 최선의 선택을 빙자한 최대의 낭비를 하고 있다. 시간이 가장 귀중한 자원이지 않나? 내 시간 낭비 하는데 당신이 보태준 거 있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만,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지 않은가. 나 같으면 그 시간에 벌써 했겠다.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면 좋겠다. 범법행위가 아니고선 대부분 일어난 후에 책임 지면 될 일 아닌가. 자신을 믿어라. 위축되면 평소엔 잘되던 일도, 쉽게 지나갈 일도 잘 안 풀린다.




나는 아직도 자유롭지 않다. 자유를 원한다. 당장에 자유란 무엇인지 확실히 정의할 수 없다만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최대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 선택이든 표현의 자유든 경제적 자유든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아무튼 자유롭고 싶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의 생각과 행동을 강제할 권한을 누군가에게 조금도 부여하고 싶지 않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 돈을 줘도 내가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겠다.


결국 내가 음악을 하는 것도. 지금 글을 쓰는 것도.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불로소득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돌이켜보니 자유를 얻기 위한 하나의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나름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독자의 입장에서 다시 읽어보니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는 말이 나올 것 같다. 얼마 전 "만약 당신이 스스로 NPC(Non Player Character) 일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NPC다"라는 일론머스크의 이야기를 접했다. 이 말을 듣고 한동안 NPC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이 글을 읽고 누군가 자유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이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자유롭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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