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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문 Don Kim Nov 27. 2021

"나는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

셩경 속 이야기에 등장하는, 유명하거나 무명 또는 무리 속에 있는 이름 모를 사람도 그들의 이야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겉모습은 물론 마음속 이야기는 그들의 처지를 보여줍니다. 한 사람이 속해있던 그 시대의 문화를 안다는 것은, 성경 속 이야기의 현장성을 느끼는 창이 됩니다.

여기 한 사람의 옷차림새는 그의 처지와 신분, 마음 상태를 드러냅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개인의 독특한 처지는 물론 그 시대의 문화, 사회 형편에 대한 넓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요한복음 4장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천천히 그 시대 속에 들어가 성경을 느껴봅니다.
                                                        

▲ 나귀에 짐을 싣고 이동하는 시나이 반도 거주 유목민 여성     © 김동문



여기 한 여인이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이 이야기를 조금 낯설게, 천천히 느껴봅니다. 우리가 소홀했던 그 현장의 소리,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보자. 평소에 거의 던져보지 않은 질문들을 던져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어떤 옷을, 어떻게 입고 있었을까요? 이 여인이 선호하는 색깔은 있었을까요? 옷의 재질은 어떠했을까요? 무늬와 촉감은 어떠했을까요? 너울로 얼굴은 가리고 다녔을까요? 아니면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을까요? 어떤 종류의 신을 신었을까요? 가죽으로 잘 만들어진 신발을 신고 있었을까요? 혹시 맨발은 아니었을까? 옷은 여인이 스스로 만들어 입었을까요? 이 여인은 스스로 벌어서 입을 옷을 구하였을까요? 아니면 6번째 남자로부터 제공받고 있었을까요? 팔찌, 발찌, 목걸이는 있었을까요? 그 장신구는 어디서 난 것이었을까요? 어떤 사연이 담긴 것이었을까요? 이 여인의 피부색, 피부결은 어떠하였을까? 얼굴 화장은 어떠하였을까? 짙은 화장이었을까? 어떤 냄새를 선호하였을까? 어떤 향기가 났을까요? 헤나나 타투 같은 것을 했을까요? 향유 같은 것은 바르고 다녔을까요? 이 여인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겉늙어 보이지는 않았을까요? 아니면 정말 어린 얼굴의 동안이었을까요? 이 여인의 가정은 어떤 가정이었을까요? 형제, 자매들은 얼마나 있었을까? 부모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이 여인의 그동안의 결혼 생활은 어떠했을까? 사촌 오빠와의 결혼이 일반적이었는데, 이 여인의 경우는 어떠했을까요? 이혼 또는 내쫓김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내쫓김의 책임에 대해 이 여인은 공감했을까요? 누군가의 첩이 되었을 때, 그 남자의 부인과 어떤 관계를 형성했을까요? 누군가의 첩이 되는 경우, 사실상의 남편과의 나이 차이가 컸는데, 이 여인은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이 여인의 자긍심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자존감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울하지는 않았을까요? 남성 혐오나 사람에 대한 혐오감 같은 것은 없었을까요? 사람들을 피해왔을까? 우연스럽게 사람을 마주했을 때, 이 여인은 시선을 어떻게 두었을까? 이 여인의 유대인 혐오, 남성 혐오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 그리심산에서 내려다본 에발산과 고대 세겜 평지     © 김동문



나는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다.

저는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사는 곳은 수가성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수많은 사회적 장벽과 조건에 다른 차별과 배제가 일상화된 시대입니다. 인종차별, 지역차별, 사회적 차별과 성차별이 일상입니다. 저는, 이런 기준에 다르면, 차별이 당연시되는 존재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유대인 남자도 아닌, 유대인도 아닌, 사마리아 남자도 아닌, 유대인 여자도 아닌 사마리아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내게는 아픈 과거와 현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이 법적으로는 남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 지역은 물론 모든 곳에서 여성들은 일찍 결혼합니다. 12세가 되면 혼담이 오가고, 13세가 되면 결혼 유무와 무관하게 여인으로 불렸습니다. 12세는 소녀로, 13세가 되기 전까지는 처녀로, 그 이후는 여인입니다. 어린 이혼녀들이 많습니다. 손쉽게 이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빵을 태웠다고 불을 꺼뜨렸다고, 말대꾸를 했다고 아니면 아예 단순히 자기 아내보다 다른 여자가 더 마음에 든다고 엉터리 같은 이혼 증서를 써주고는 내쫓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여성들의 재혼까지만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혼녀들의 경제 활동은 여의치 못합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적지 않은 이혼녀들은 첩살이나 직업여성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척박한 삶이 이 시대를 사는 여자의 운명이지만, 제가 겪은 상황은 너무 아픈 기억이 가득합니다. 이미 5번이나 남자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남자들은 다 버러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도 남자를 떠나서 살지 못하고, 또 다른 남자의 첩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이 첩살이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릅니다. 얼마 전, 예루살렘에서 한 남자의 첩이었던 여인이 간음죄로 돌에 맞아 죽을 위기를 겪기도 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의 삶은 율법이 허락하지 않는 간음 하는 삶입니다. 내쫓김의 두려움은 물론이고, 목숨의 위협까지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운명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남자들이 혐오스러울뿐더러, 저와 다른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조차 이제는 역겹게 느껴집니다.

스스로 유령처럼 사람들과 단절하고 저의 존재를 감추고 살아갑니다. 어차피 저는 사람들 속에 있어도 투명인간 같은 존재일 뿐이기에, 이런 저의 삶이 이상스럽지도 않습니다.

우물가는 해질 무렵에 여인들의 만남의 장소입니다. 들에서 꼴을 뜯던 양 떼의 갈한 목을 축이기도 하고, 저녁을 준비하려는 여성들이 필요한 물을 길어가거나 빨래를 하는 곳입니다. 여성들의 푸념과 하소연, 회복의 장소입니다. 저도 이곳에서 다른 여인들과 더불어 수다를 떨고 일상사를 나누던 때가 있었지만, 오래 전의 추억일 뿐입니다.

그런데요, 먼 거리를 걸어서 이제 겨우 우물가로 다가왔는데, 저기에 낯선 남자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다가섰다가는, 누군가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저는 간음한 여인으로 내몰려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지금 남편의 귀에라도 들어가면, 저는 여지없이 내쫓김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 남자는 이곳 지역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나를 이렇게 곤경에 빠뜨리는 것인지요? 나는 지금 어떻게 하여야 하나요? 그냥 발걸음을 돌려서 빈손으로, 빈 물통을 갖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요?

이런 여인이 예수님과 만나고, 여인의 처지는 그대로였지만, 새로운 삶을 누리는 전환점을 누리게 되었다. 사람들의 배제와 혐오, 차별이 가득한 곳에, 예수님은 그곳에 계셨다. 그리고 여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가 있다고 몸으로 드러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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