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다른 모습은 수치이다. 명예는 수치를 감추는 행위이기도 한다. 수치는 다양한 요소를 갖고 있다. 부족함이 드러나는 행위 전체가 수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드러나지 않는 것은 명예라고도 생각한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뻔한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이들을 적잖이 만났다. 심지어는 자신이 무슬림이고, 알라를 믿는 자로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까지 하면서도 거짓을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만난 한 외국인 무슬림 지도자도 그런 거짓을 일삼는 나쁜 무슬림들이 있다고 했다.
사실 아랍 지역에서는 거짓말에 많이 관대한 편이다. 자신의 부족이나 결핍을 감추는 것이 명예로운 행동이다. 이것에 도움이 된다면 거짓말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의 말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자주 알라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그렇지만 알라의 이름으로 한 맹세도 자주 거짓임이 드러난다.
‘수치’ 하니 생각나는 아찔한 장면이 있다. 오래전 이집트 카이로 시내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거리에서 덩치 큰 한 아주머니에게 사정없이 얻어맞고 있는 이집트 아저씨가 있었다. 남자는 아무런 대꾸고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대드는 것이 명예인지, 아니면 그냥 맞고 있는 것이 수치인지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아랍인들은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것에 집착하는 나머지, 다른 이에게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도 미안함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데 힘들어한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일을 저지른 당사자가 피해자에 해당하는 이에게, ‘별일 아닌데 신경 쓰지 말라’ 고 한다. 어떤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법적, 사회적 잘못을 저질렀고, 그 책임을 인정한다는 고백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허례허식이나 자신을 감추거나 포장을 하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책임회피에 익숙한 말투나 행동이 자주 눈에 띈다. 이것을 보여주거나 엿볼 수 있는, 아랍어 표현의 독특함이 있다. 주어가 없는 표현이다. 컵을 깨고도 ‘컵이 떨어져서 깨뜨러졌어’한다. ‘문이 망가뜨려졌어 “ 하는 식이다. 자기 사람이나 자기 가문이나 자기를 맹목적으로 두둔하거나 옹호하는 것에 익숙하다. 강한 척, 아는 척, 있는 척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카이로에서 수년 전 택시를 타고 한 관공서를 찾아갔다. 카이로 사람으로 택시 운전기사로 일한 지도 10년도 훨씬 넘는 이집트인 운전기사와 더불어 거의 한 시간 이상을 헤맸다. 길을 물어볼라치면 나름 확신 있게 답변들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그곳에는 그 관공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한 시간여. 할 수 없이 혼자 걸어가리라 생각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런데 찾던 그 관공서가 눈앞에 들어왔다. 운전기사는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떤 미안함도 사과도 없었다. “어, 그 건물이 여기 있었네. 우리가 바로 찾아왔네” 하는 것이었다.
적지 않은 아랍 사람들은, 자기의 부족함이나 무지가 드러나는 것을 불명예라 생각하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정답을 말해주려 애를 쓴다. 그 부족함이나 무지가 들통이 나면 많이 힘들어한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할 수 있는 용기가 수치가 아니라 명예인 것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자신과 자기가 속한 집단의 명예는, 상대방에게 수치를 안겨주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믿기도 한다. 아랍 사회에서는 나의 명예로움과 상대의 수치는 비례하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