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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책장 Apr 24. 2022

흑백의 연필로 기록한 무채색 전쟁 이야기

<전쟁일기> 올가 그레벤니크 글. 그림 / 정소은 옮김 / 이야기장수

올가 그렌벤니크는 우크라이나의 그림 작가다. 여우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글과 그림을 그렸다.  또 다른 이야기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전쟁 이야기는 전혀 아니었다. 작가의 일상을 새벽 폭격 소리가 순식간에 빼앗아 갔다. 전쟁은 그녀에게  색색의 아름다움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리고 연필만을 쥐여주었다. 그녀는 일상의 활기는 다 사라져 버린 무채색 전쟁을 흑백의 연필로 기록한다. 이 일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폭격한 2022년 2월 24일부터 3월 12일까지의 <전쟁일기>이다.

 설마 했던 전쟁이 일어난 것도 믿기 힘들고, 전쟁의 실상을 그린 일기가 전쟁 중에 우리나라에서 출판한 것은 더 놀랍다.  '이야기장수' 출판사 대표는 전쟁이 시작되고 올가 그렌베니크가 인스타그램에 그린 그림을 보고 연락했다고 한다. 이럴 때 전 세계가 연대할 수 있는 SNS의 힘이 느껴진다.  전쟁 안팎으로 힘을 모으는 일. 피해자만 있는 전쟁의 폐해를 알기에 무해한 개인들의 고통을 멈추기 위한 절박함이 만들어낸 <전쟁일기>를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내 인생 35년을 모두 버리는데 고작 1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엄마를, 집을 두고서. 내 아이들을 위해 <전쟁일기>86p


 <전쟁일기>는 뉴스를 통해서 보는 전쟁 소식에서 한 발 더 나가 개인의 공포를 통감하게 됐다. 내일의 아침 메뉴를 생각하고 잠들었던 일상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돌부리에 넘어져 피가 나는 아이의 무릎만 봐도 마음이 아파 그 돌부리를 치우고 싶다. 이와 비교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을 상상하다 멈춘다. 엄마도 무섭다. 그럼에도 두 아이를 생각하며 꾹꾹 누른다. 전쟁놀이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숨어있던 지하실에서 올라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전쟁통의 내 고국을 떠나기로 한다. 당장 불가리아는 계획에 없던 나라다.  낯섦을 즐기려는 여행자의 마음이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숨 하나 들고 도망쳤다. 엄마와, 남편은 두고.

 

전쟁은 탄탄하게 쌓아온 것들을, 그게 무엇이든 순식간에 무너트린다. 전쟁을 피해 간 곳이 두렵고 고단한 여정의 끝이었으면 좋겠지만, 낯선 곳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고국의 전쟁을 지켜보는 삶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더 많이 이야기하고 알려서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의 개개인의 아픔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작가가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영웅들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믿'었던 마음으로 우크라이나에 다시 색을 입힐 그날의 기적을 위해 힘내라고.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올가 그레벤니크


1986년 우크라이나 하리코프(하르키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그림책 작가로 살고 있다. 아들 표도르(9세)와 딸 베라(4세)의 엄마이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 엄마, 화내지 마』 등 그림책을 출간했다. 그가 삽화를 그린 모든 책은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그림 작품은 현재 22개국 개인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 그의 프로필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저는 지금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영웅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을 믿습니다. 인생에서 저는 한계가 아니라 기회를 봅니다."

화려한 색감과 환상적인 그림체로 촉망받던 그의 인생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송두리째 뿌리 뽑혔다. 이 책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 급박한 순간 속에서도 그가 연필 한 자루로 일기장에 기록한 모든 글과 그림이 담겨 있다.

인스타그램 @gre_ol

홈페이지 https://olyagrebennik.wixsite.com/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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