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6년여의 대학생활 동안 늘어지게 자본 일은 손에 꼽는다. 오죽하면 논산훈련소에서 고된 군사훈련을 받을 때에도, 9시간 재우는 게 좀이 쑤셔 뒤척였을 정도니까.
물론 나는 태생이 잠이 없는 편은 아니다. 아잇적엔 한 번 재워두면 늘어지게 통잠을 잤더랬다.
돌이켜보면 초중고 모두 잠을 잘 잤다. 고3 시절과 재수, 삼수에 걸친 수험생 시절을 빼고는 머리만 대면 잠에 들곤 했다. 그러니까 내 불면의 유구한 역사는 고3 수험생 시절이 시작일 테고, 그 정도가 심해져 본격적 불면의 밤들을 보낸 것은 지난 6년간의 대학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다.
토막잠을 자며 항상 긴장상태에 있던 6년간의 내 팔자는 스스로 꼰 경향이 있다. 광고업, 나는 왜 하필 그것에 빠져 그리도 박 터지는 경쟁 속에 자신을 밀어 넣고 시커먼 커피와 더 시커먼 다크서클의 앙상블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을까. 더구나 전공과는 상관없는 꿈을꾸면서 때로는 도둑공부로 이따금 자율학습으로 그 경쟁을 버텨내야 했으니, 벅찬 현실 앞에 잠은 사치요 다른 모든 욕구보다 먼저 포기하기 간편한 존재였다. 곱절의 수험생 시절 가장 싫어하던 말이 ‘4당5락’, 4시간을 자면 붙고 5시간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이었는데,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어느새 온몸으로 그 격언을 되뇌며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이 얼마나 벨도 곤조도 없는 일인가.
하지만 이처럼 벨과 곤조도 없이 잠을 줄이고 시간을 벌어 계속해서 노력해 온 덕분에 졸업과 동시에 원하는 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불면의 아이러니랄까.
이 아이러니가 쏘아 올린 운과 결과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돌이켜보건대 이 모든 일은 잠에서 시작됐다. 잠을 줄여가며 부단히 성장했던 지난한 나날을 지켜봐 준 주변인들의 응원과 도움 덕이요, 잠을 잊고 일하던 나의 간절함을 알아보고 다양한 기회를 건네준 업계 선배들 덕이요, 잠을 못 잔 아들이 쓰러지지 않게 ‘단백질 위주로’ 잘 먹인 부모님 덕이다. 그리고 그다음, 오늘만은 잠도 줄여가며 초조했던 나날을 악으로 깡으로 버텨낸, 그리하여 오랜 꿈을 마침내 이뤄낸 거울 앞 한 명의 독한 인간에게 덕분이라고 전하고 싶다.
졸음이 쏟아진 날이면 자꾸만 속으로 읊조리던 문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 리크루트사의 명카피, ‘좋은 패스는 달리는 사람에게 날아간다’. 속으로 골백번도 더 넘게 이 문장을 읽고 쓰며 좋은 패스가 날아올 날을 기다렸다. 기다리며 종으로 횡으로 ‘광고’를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한 번의 패스가 날아와 한 번의 골을 넣었다. 하지만 이는 전반전도 끝나기 전 운이 좋게 한 골이 들어갔을 뿐이라는 걸 나는 안다. 살얼음판을 걷듯 다시금 스스로를 경계하며, 이제는 직업인으로서 부지런히 달리는 사람이 되어 또 한 번의 좋은 패스를 기다려야겠다. 나는 아직 골이 고프다.
물론 이번에는 나를 조금 더 재워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