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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Nov 10. 2024

흔치 않은 다정

 시간이 흘러도 다정은 남는다. 이것은 사람을 대할 때 나의 철칙이자 일종의 무기이다. 쉬이 스쳐갈 인연들에게도, 잘 보여야 하는 사회적 관계들에게도, 진정으로 애정하는 사람들에게도 최대한의 다정을 건네려고 한다.


 그 이유는 내가 건네받은 다정이 너무나도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 돌아가신 할머니가 다정히 쓰다듬던 손길도, 조잘대던 어린것을 향해 묵묵히 내어주던 외할아버지의 큰 귀도, 술에 취해 비틀대던 머리가 담벼락에 닿지 않게 가려주던 한 선배의 투박한 손도. 아플 때 꺼내 먹으라며 잔뜩 채워둔 아르바이트 사장님의 뚱뚱한 상비약 꾸러미도. 시간이 흘러도 내게 온 다정은 여전히 마음의 곳간을 푼푼히 채운다.


 일상에 지치고 사람에 치이는 날에는 마음의 곳간 속 다정한 기억을 만지작 댄다. 그리고 다시 넉넉해진 마음으로 미운 상황이나 대상을 조금 더 곱게 본다. 내가 건네받은 다정은 그렇게 내가 한층 더 씩씩하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다정을 건네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저마다 다르다. 시뻘건 얼굴로 화를 내다가도 갑작스러운 다정 앞에 머쓱한 미소를 보이는 사람. 반가운 다정에 무장해제되어 더 큰 다정으로 화답하는 사람. 흔치 않은 다정이 당황스러워 오히려 얼굴을 붉히는 사람. 다정을 건네받고도 여전히 무뚝뚝한 사람. 그러나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더 다정한 태도로 이 관계에 임한다는 것. 이렇게 다정은 내가 누군가를 대하는 가이드이자, 상대방이 내게 무심이나 무례를 보이지 않게 하는 일종의 방어선이 된다.


 어릴 때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느끼는 건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이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어렵다는 것. 사실 나이가 들수록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헷갈린다. 챙겨주는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 그래서 요즘 나는 정의조차 헷갈리는 '좋은 사람'이 되려하기 보다는,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작은 다정으로 앞에 있는 사람의 하루를 조금이나마 낫게 만들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며. 그래서 오늘도 다정보다는 무정에 가까운 시대에 나는 부러 흔치 않은 다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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