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를 초래한 극우 대통령]
우리는 보았다. 군화 신은 군인이 총을 들고 국회와 선관위를 점거하는 계엄의 밤을. 1970년대 유신시대도, 1980년대 신군부독재 시대도 아닌 대명천지 2024년에 말이다.
아둔한 한 사람의 권력이 우리가 그간 살뜰히 가꿔온 민주주의에 얼마나 큰 우를 범하는지, 국민의 일상과 나아가 국리민복에 얼마나 많은 화를 끼치는지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그날밤 이 땅의 민주주의는 위기였다. 190명의 국회의원이 국회의 담을 넘지 않았더라면, 성난 시민들이 국회를 둘러쌓고 계엄군의 점거를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영문도 모른 채 투입된 계엄군들이 상부의 부당한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더라면,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일상적 자유는 또다시 군부에 의해 찬탈될 뻔했다.
이 모든 게 괴랄한 영웅심리와 극우주의에 빠진 대통 령 윤석열의 오판에서 출발했다. 뒤늦게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친권력 세력의 전언이 이를 방증한다.
[명분도 실리도 못 챙긴 계엄선포]
대통령이 밝힌 계엄의 명분은 국회 내 반국가세력 척결이었다. 여기서 대통령이 규정한 반국가세력은 집권여당 외 야당이며, 정부 인선에 대한 야당의 잦은 탄핵과 예산안 삭감이 그 결정적인 트리거였다.
문민정부 수립 이래 여소야대 국면에서 흔히 마주하는 야당의 입법독주가 몰상식한 계엄의 명분이었고, 삼권분립의 상징인 국회의장과, 눈엣가시였던 야당 주요인사는 물론 자신에게 어깃장 놓던 여당의 당대표까지 일소에 처단하는 것이 대통령이 취하고자 했던 계엄의 실리였다.
이 일련의 과정은 대통령에게 반대하면 반국가세력이 되던, 타협보다는 탄압을 일삼던 유신독재정권과 신군부가 했던 역사를 그대로 답습한 처사였다. 이후에도 속속들이 드러나는 지난하고 교묘했던 계엄준비와 대북 국지전 유발 시도 정황은 내부의 무능을 외부로 돌려 권위를 세우던, <독재 바이블>에나 나올 법한 내용을 충실히 따르려던 초보 독재자 지망생의 어쭙잖은 선택이었다.
[뒤로 숨은 대통령, 권력 잡은 집권여당]
이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대통령이 생각해 낸 탈출구는 그저 숨는 것이었다. 자신의 판단이 절박함에서 비롯된 구국의 결단이었다는 핑계와, 자신의 거취와 모든 권력을 여당에게 일임한다는 위헌적인 결정으로 또 한 번 국민을 기만했다.
이 기만에 편승한 집권여당은 현시국의 가장 적법하고 제일 빠른 해법인 탄핵의 수용은 물론 '표결'조차 거부했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국회 문 밖에서 탄핵을 부르짖으며 대의민주주의의 집행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도, 탄핵안 부결을 당론으로 삼고 3인을 제외한 모두가 투표조차 하지 않은 채 회의장을 떠났다.
그리고는 잠시뒤 대통령의 직무배제와 국무총리 및 집권여당 대표의 대통령 권력 행사를 탄핵의 대안으로 내어놓았다. 이는 우리 헌법 어디에도 없는 기형적인 권력이양 방안이다. 불법으로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 뒤로 숨으며, 또 한 번의 불법으로 자신의 권력을 측근에게 넘기는 친위 쿠데타의 연속일 뿐이다.
[유일한 질서는 윤석열 즉각 퇴진이다]
여당이 주장하는 질서 있는 퇴진이란 대관절 무엇인가? 대통령 퇴진에 대하여 우리 헌법이 규정한 유일한 질서는 탄핵이나 대통령직 사임으로 인한 적법한 궐위뿐이다. 탄핵을 당하지도 사임을 하지도 않은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집권여당 대표에게 권력을 떼어주는 일이 21세기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도대체 왜 벌어지고 있는가?
이 정부 들어 일상이 된 비상식에 매 순간 기함했던 대다수의 국민들이 국회 앞에 엄존한다. 정국 수습 방안이랍시고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내린 오늘의 결정은 더 이상 그들이 참을 수 있는 역치를 넘어섰다. 더 많은 국민이 국회를 둘러싸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촛불을 들 것이 자명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K-컬처로 전 세계에 위세를 떨치던 대한민국은 계엄 이후 여행 위험국으로 전락했다. 가뜩이나 기업이 도산하고(각주 1), 자영업자는 길거리에 나앉는 요즘(각주 2), 계엄 탓에 환율이 더 오르고 내수는 더 얼었다. 주가는 날이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계엄은 이처럼 국가와 국민 생활 전반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처럼 명분 없고, 실리 없는 계엄을 일으켜 국란을 초래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 대내외적인 우려와 걱정을 불식하는, 말 그대로 유일한 질서의 길이라는 사실을 집권여당은 하루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여당 뒤에 꽁꽁 숨은 대통령의 비열한 권력 유지는 국익의 더 큰 피해로 돌아올 뿐이다.
각주 1 : [신음하는' 중소기업… 올해 파산신청 법인 1500곳 넘겨], 뉴시스, 2024.11.21, https://n.news.naver.com/article/003/0012915923?sid=101
각주 2 : [연말 예약마저 텅텅…"장사 접는다" 폐업 100만 시대], JTBC, 2024.11.28, https://n.news.naver.com/article/437/0000420276?sid=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