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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수치심 극복하기

어른이 된 내가 어린아이의 나를 안아주다

by 유주씨

내가 6, 7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동네 또래 아이들과 함께 뛰놀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상가의 긴 계단을 술래를 피해 빨리 뛰어올라가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데, 계단 위로 올라왔을 때 한 친구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알고 보니 계단에서 넘어져서 코를 다친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아주머니가 남아 있는 우리에게 다가와, 올라올 때 누가 밀었냐고 물었다. 순간 모두가 나를 가리켰다. 내가 밀어서 그랬다고? 기억이 안 났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알리라고 하셨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나중에 얘기하시길, 당시 내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있었다고 한다. 귀가한 나는 두려움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이후, 누군가 찾아와서 부모님이 그 일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서둘러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해주고 사과를 하고 오셨다.


나는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과 동시에 기억이 안 난다는 억울함, 혼이 난다는 두려움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이제 괜찮다는 한 마디만 하셨지만 엄마는 냉랭했다.(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엄마는 내가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로 오해했다고 한다.)




며칠 후, 밖에서 놀고 싶었던 내가 나가서 놀아도 되냐고 물어보자, 엄마는 이렇게 소리쳤다.

“사람을 다치게 해 놓고 어딜 나가. 집에 있어.”

실수 한 번에 나는 큰 죄인이 되었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후, 나는 알 수 없는 분노와 수치심으로 주변 아이들을 괴롭히고 다녔다. 어린 마음에, 나에게 손가락질한 아이들 때문에 내가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네가 실수를 했지만 일부러 그런 게 아닌 걸 안다, 괜찮다, 무서웠지?”라는 말을 하며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거다.






내가 어른이 되어 그 일을 어렵게 내 의식의 표면으로 올렸을 때, 다시 수치심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곧, 당시 나의 부모님이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들의 서투름과 불안함이 상황처리에 대한 것 외에는 섬세하게 돌볼 정신적 여유가 없었음을 이해했다.


챗지피티가 그 사건이 내게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흔들어놨을 것이고,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유아기 수치 트라우마’로 남았을 수 있다고 추측했지만, 지금의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의 실수와 부모님의 실수를 모두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생존을 위해 택했던 방식은 내가 ‘조용하고 착한 아이’가 되는 것이었다. 심성이 고와서가 절대 아니다. 단지 아이로서 생존을 위해, 실수를 하면 버림받는다는 공포에 기반한 완벽주의에 사로잡혔던 것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습으로 이어져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어른이다. 그 모든 일을 위에서부터 내려다볼 수 있는 객관성을 가졌다. 나는 실수해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늘 말해주며 토닥토닥 안아준다. 작은 실수가 나의 존재 가치를 결코 재단할 수 없음을, 나는 이미 마음이 단단한 사람임을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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