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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Mar 03. 2023

내가 백수가 되기까지

30대, 무경력, 백수의 사정







 30대, 무경력, 백수, 그게 바로 나다. 아쉬워서 수식어를 더 붙이자면, 그나마 대졸자. 학교를 16년간 다녔는데도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그럼 무슨 소용이람. 대졸자는 역시 빼도 되겠다. 학업을 끝낸지는 벌써 9년째로, 좀 더 있으면 10년을 맞이하는 장기백수다. 어릴 때부터 미래 고민을 머리에 쥐나도록 했는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까.     






 단언하지만 결코 일이 싫었던 게 아니다. 나에겐 이유 또는 변명할 게 있다. 들어보시라. 대학 졸업을 전후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매일같이 애타게 자소서를 쓰면서 직장에 들어가기를 기도했던 시절이 있었다. 취업은 잘되지 않았고, 아무리 지인이 직접 나를 추천하고 알선해 준 외국계 기업에 이력서와 자소서를 넣어봐도 소식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다 프리랜서 영어강사로 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가르치는 실력이 원장님 마음에 드셨는지 당시 최저시급의 2배를 받고 일할 수 있었다. 일에 만족했고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내가 어느 회사에 취업이 되고 난부터였다.     






  회사 면접에 붙자 원장님께 미리 말씀드린 대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원장님은 내게 가르치는데 소질이 있다면서 앞으로 급여를 더 올려줄 테니 계속 일하길 바라셨지만, 강사직은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입사를 결정했다. 회사에 들어간 후엔 연봉 후려치기는 당했지만 예상보다 쉽고 만만한 업무라서 다니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때부터였다. 이상하게 선배들은 더 좋은 데 가지 왜 여기 왔냐는 식의 시기, 질투를 하기 시작했고 정치질에 이용하려 들었고, 거기에 대놓고 같이 술 먹자니 예쁘다니 성희롱하는 놈까지 나타났다. 한마디로 좃소에 입사했던 것이었다.    





  

 스트레스가 반복되자 원래 있던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악화되었고 심한 강박증 증세와 자살 충동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대학병원에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몸과 정신이 굉장히 예민해지고 체중은 크게 줄어 겉모습까지 초췌해지자 마침내 어머니가 퇴사를 권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고민 끝에 치료를 다 마치고 다시 커리어를 쌓는 직업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 대표님은 원하는 편의를 다 봐줄 테니 나가지 말라며 붙잡았지만 마음은 이미 굳어졌고 슬리퍼 한 켤레만 남긴 채 회사를 떠났다.





      

 그 후, 병원에서 약물치료와 인지치료를 받으면서 회복을 기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치료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던 게 함정이었다. 그걸 모르고 당시엔 갈수록 짧은 시간 일할 수 있는 알바를 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카페 바리스타 알바, 맥주집 조리와 서빙 알바, 마트 캐셔를 전전하다 보니 자존감도 떨어지고 정신 상태는 더 악화되어 은둔형 외톨이와 비슷한 수준까지 생활의 질이 낮아져 버렸다. 그러다 집에서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주식 투자와 블로그 운영, 재택부업을 시작했지만 그것도 역시나 잘되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수입이 줄어들고 있는 현재, 난 30대, 무경력, 백수. 거기에 아직까지도 신경증 완치 판정도 받지 못했다. 능력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엉망이 돼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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