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주씨 Aug 12. 2024

2010년대 내가 살았던 고시원 이야기

외부 창문 있으면 비싼 그곳






 지금부터 10년 전쯤의 이야기를 한 번 풀어보려고 한다. 경기도의 어느 고시원에 살았던 이야기다. 나는 10년 전, 대학교 앞의 고시원에 처음으로 입주했다. 학기 성적이 떨어지는 바람에 기숙사에 불합격되었고, 하는 수없이 보증금이 적은 고시원에 들어갔다. 방 안에 외부 창문이 있고 화장실과 냉장고, 에어컨이 있는 그나마 좋은 방이었다. 게다가 주방에는 쌀밥이 들어있는 전기밥솥이 있었다. 월세는 40만원 정도였고 다행히 아버지가 부담해 주셔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여자들만 살 수 있는 곳이어서 선택한 고시원이었는데 이래저래 피곤한 일은 많았다. 방이 협소하다 보니 소음도 있었고, 관리가 잘 안되는 공용 정수기에, 또 어떤 날은 누군가 공동현관에 둔 내 슬리퍼를 신고 나가는 바람에 제자리에 돌려놓으라는 호소문(?)을 붙인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피곤해서 이런저런 집안 사정으로 원룸에 살 수 없었던 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알바라도 해서 원룸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건강 탓으로 돌리면 너무 비겁할까.     







 어쨌든, 학업을 마칠 때까지 거기서 살다가 다음 스텝인 취업을 위해 그 학교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고시원을 다시 구했다. 역시 그곳도 여자들만 사는 전용 고시원이라서 택했다. 외부 창문이 있고 화장실, 냉장고, 천장에는 중앙조절되는 에어컨 구멍이 있는, 또 그나마 좋은 방에 들어갔다. 월세는 학교에서 멀어서 34만원 정도였던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솔직히 그곳은 한동안 내가 잊고 지내고 싶은 장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같은 고시원에서 방을 한 번 옮기고, 주인도 바뀌었으며, 이래저래 관리가 썩 잘 되는 곳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소음도 만만찮았는데 이건 내가 예민한 시기에 있어서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한 번은 취업을 했다가 맞지 않아 퇴사를 한지 얼마 안 있어서였다. 그곳엔 평소에도 스쳐 지나갈 때 확실히 이상하다 싶은 여자가 있었는데 살짝 눈이 마주쳤을 뿐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갑자기 XX 하면서 욕을 중얼거리는 사람이었다. 조심해야지 하던 찰나 그 사건은 터졌다.     









 옮긴 방에서 여전히 취업을 다시 준비하던 어느 날, 피곤에 찌들어 화장도 못 지우고 잠들었었다. 그런데 눈이 떠지니 그 한밤중에 문밖 복도에서 고래고래 욕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당장 나오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취한 여자인가, 돈 받으러 온 사채업자인가, 아니면 남친한테 차여서 뒤집어엎으러 온 것인가 알 수 없었다. 별일 아니겠거니 하면서 몇십 분 뒤 조용해지고 다음 날이 되었다.      



 그날은 외출을 했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이번에는 내 방문을 누군가 부술 듯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XXX아 빨리 나와!!” 온갖 상스러운 욕을 하면서 문을 미친 듯이 두들기는 소리에 겁을 먹고 고시원 주인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주인은 전화를 받더니 잠깐만 나와보라는 말을 했다. 영 알지도 못하는 그 여자랑 주인은 아는 사이인지 내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 칼이라도 들고 있나 싶어 경찰을 부를까 하다가 결국 그냥 조용히 나와봤다.     






 그 여자는 씩씩거리면서 주인아줌마와 서있었다. 고시원 밖에 나와 일단 자초지종 설명을 들어보기로 했다.


“이 여자가 저녁마다 내가 방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귀에다 속삭인다고요!”


기가 막혔다. 무슨 헛소리인가 싶어서 주장을 들어보니 이건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하는 소리였다. 차마 당신 미쳤냐고 물어보진 못하고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문제는 주인아줌마는 나보단 그 여자 편에 서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대로 가다간 더 어이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밤 벙져서 뜬눈으로 책상에 앉아 밤을 지새웠고 새벽 6시에 트렁크에 짐을 싸서 근처 경찰서로 향했다. 부스스하니 야간근무를 하시던 형사님께 잠깐 상담을 받았는데 되도록 피해서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곧장 기차역으로 갔다. 우선은 고향 집으로 내려가 있어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본가로 잠시 내려왔다는 문자를 주인에게 보내놓고 그 여자를 한 번 지켜보라는 얘기를 남겼다.


     

 그리고 며칠 뒤 역시나 일이 생겼는지 연락이 왔다. 내가 방에 없던 동안, 그 여자는 또 복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보고 나오라며 소동을 벌였고 마침내 경찰도 출동하여 주인과 함께 내 방문을 열어보고서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상황이 수습됐다는 이야기였다.



 세상에, 역시나 그 여자는 정신증 환자였다. 경찰 쪽에서는 당장 병원 치료를 받으라는 경고를 내리고 떠났고 주인아줌마 또한 당장 방을 빼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곧 나는 이미 취준에도 이골이 나고 돈도 없는 고시원 살이에 질린 상황이라 고향으로 일단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부모님과 방을 빼러 간 날, 고시원 앞 쓰레기장에서 그녀를 마주쳤다. 나를 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선을 돌리고 조용히 토익 책을 버리고 있었다.



 주인아줌마는 오늘 그 여자도 방을 뺀다며 나도 옮긴다면 이 지역은 피하라고 전하기만 할 뿐, 내게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것에 대해 사과도 하지 않고 가더라. 뭐, 피차 놀란 건 마찬가지겠지만. 일수가 남았지만 월세 차액에 대해서 딱히 요청하지 않고 나왔다.







     

 질리고 질렸던 이 사건 후, 고시원에서 살 거면 수도권에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최소한 원룸은 살지 못하면 고향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고 몇 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드디어 원룸 정도는 구해서 버틸 자금도 마련했고 어쩌면, 기회가 된다면 수도권에 다시 일자리를 찾아서 올라갈 수도 있겠다.



 당시엔 충격적인 사건이어서 이후 안정적인 주거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고 그동안 신경증 치료를 받아본 환자로서는 그녀의 상황도 이제 와서는 안타깝게 느껴진다. 물론 오랜 시간이 흘러서 가능한 것이긴 하다만.   





  

 이제는 추억이 된 2010년대의 고시원은 한때는 내게 시원하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준 곳이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준비의 공간이고 재활 또는 생존의 공간일 수도 있겠다. 이래저래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곳에도 재밌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들 나와 마찬가지로 자주 웃으며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곳에서 스쳐 지나간, 각자의 삶과 고군분투하던 그 모르는 사람들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조금 민감한 스토리도 담겨 그동안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려웠지만 오늘에야 털어내본 2010년대의 고시원 생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적 자유로 가는 샛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