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서울 아파트는 어떻게 다른가
나는 지방 소도시의 20년도 더 된 아파트에서 산다. 이 동네 근방에서는 상권, 직장, 초중고가 다 가까워서 매물이 귀하다고 하는 그럭저럭 살 만한 아파트다. 오래 살아도 답답하지 않고 층간 소음이나 이웃 등 그렇게 큰 불편함은 없어서 만족하고 있다.
한편, 현재 친오빠가 사는 오래된 서울 아파트는 다르다는 걸 알았다. 쉴 때 놀러 가서 신세를 지고 온 적이 몇 번 있고 직접 전해 들은 이야기도 있다. 지금부터 쓰는 이야기는 서울 아파트가 다 그렇더라는 게 절대 아니고(당연히 잘 모른다), 지방러의 입장에서 겪고 들은 매우 한정된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뿐이니 읽으시는 분들의 오해가 없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부디 참고만 해주세요)
(1)
먼저 그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안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모르는 주민이어도 엘리베이터에 타면 인사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거긴 아무도 먼저 인사를 안 하는 분위기였다. 어쩌다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가 타길래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는데 할머니의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응? 나 알아요? 하긴 우리 아들도 앞 동에 집 하나 했고 나도 여기서 오래 살았지.” 어쩌고저쩌고. 단순하게 “안녕하세요.” 하고 답하고 지나가면 되는 일인데 인사 한 마디에 의아해하는 분위기부터 뭔가 달랐다. 이런 게 문화 차이인가. 워낙 사는 게 바쁘고 사람도 많으니 여유가 없는 서울이라서 그런가. 오빠가 여긴 다르다며 인사하지 말래서 이제는 안 한다. 시무룩.
(2)
그리고 리모델링하기 전엔 여러 이웃집을 방문해 서명을 받고 불편한 소음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한다. 전에 오빠도 서명을 받았지만 이건 거기만 그런 건 아니었다. 나중에 경기도 안양에 아파트를 마련한 친구도 리모델링할 때 그렇게 했다고 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수도권에서는 그렇게 소음 민원에 대해 미리 철저한 대응을 해두는 서명 문화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아파트는 심플하게 엘리베이터나 공동현관 벽에다 인테리어 업체에서 양해문 하나만 척 붙이고 쏘쿨하게 드르륵하고 며칠간을 시끄럽게 공사하는 분위기다. 사실 오늘따라 리모델링 공사로 시끄러워서 에어팟 끼고 있다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었다.
(3)
또 다른 점으론, 마치 일본처럼 쓰레기를 배출하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 만화에서 주인공이 쓰레기 버리는 시간을 놓쳐서 허탈해하는 장면이 종종 나왔던 게 떠올랐다. 분리수거장에 쓰레기가 안 쌓여 있으면 깔끔하니 좋긴 하겠다만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늦은 퇴근 후에도 오빠는 쓰레기를 버리러 다시 나가야 했다.
(4)
마지막으로는 아파트 반상회 주민들의 입김이 거세고 무슨 건이 생기면 주민끼리 말이 많고 언성도 높아진다고 들었다. 다들 주거지에 굉장히 민감하고 관심이 높은 모양이다. 평균가가 비싸고 열정 가득한 서울이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우리 아파트는 반상회도 없앤 건가 싶을 정도로 일년 내내 조용한데 말이다.
이렇게 오빠가 서울에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겪기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방식은 다양하다는 걸 느꼈다.
오늘도 내가 사는 아파트는 평화롭다. 어릴 때는 아파트 주최로 명절에 윷놀이하면서 떡과 음료를 얻어먹었던 정겨운 기억이 있다. 그러나 변기에 물티슈를 넣고 내리는 몰상식한 주민 때문에 오수관이 막혀서 공사로 손실이 났다고 자제해 달라는 방송을 들었던 골 때리는 기억도(이하 생략)... 아파트란 그런 곳이죠, 하하. 무튼 내가 모르는 건지는 몰라도 대체로 평화롭다.
그런데 층간 소음으로 시끄럽든, 주민끼리 싸우든, 쓰레기도 날 맞춰서 버려야 하든 어쨌든, 약 3분 마다 지하철 역 앞으로 향하는 마을버스가 정거장에 멈춰 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솔직히 부럽다.
나두! 야너두?!
아마도 내가 평생 가지지 못할 집일 수도 있어서 생기는 막연한 동경일까, 신기하고 재밌는 게 많은 서울이라서일까?
기나긴 다름의 열거에도 디스가 아닌 찬양으로 끝나는, 그럼에도 또 놀러 가고 싶은 어느 서울 아파트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