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게 할머니가 그리울 때도, 엄마에게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말해봤자 슬픈 사람이 한 명 더 늘 뿐이다. 고통과 슬픔은 불어나긴 쉬워도, 어쩐지 잘 쪼개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숙명처럼 고된 삶을 듣고 있자니 맘과 몸이 뒤틀린다. 이미 내 곁에 없는 할머니이다. 그의 고단한 과거를 고쳐줄 수도, 현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도 없게 되어 버렸으니, 더 이상 힘든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유난히 따뜻하던 설에 어쩐 일인 엄마가 아프지 않은,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 주었다. 참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말이다. 할머니의 뒤늦은 초상화를 열심히 그려본다. 우리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나를 위해. 산 자를 위한 초상화를 그린다.
할머니의 아버지.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엄청나게 부자였다고 한다. 한 자리에 서서 다 쳐다볼 수도 없는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 으리으리한 집과, 그 곳간에는 언제나 쌀가마니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가난한 우리 할아버지와 결혼했다. 할아버지는 그 시절 다수가 그랬듯, 소작농이셨다. 둘은 찢어지게 가난하진 않았지만, 입에 풀칠은 '잘'할 만큼 소박하게 사셨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징집이 되셨고, 전쟁 중 다치기까지 하셨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할머니는 혼자서 어린 5남매를 키웠다. 나는 당연히 부잣집 아버지가 있으니, 손 벌리면 안 됐냐고 물었다. 엄마도 마찬가지로 할머니에게 그 말을 여러 차례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할머니는 입을 굳게 닫으셨다.
사연은 이랬다. 할머니가 결혼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다시 결혼을 하셨고, 할머니에게는 새어머니가 생겼다. 할머니의 나머지 형제자매들은 여전히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셨다. 하지만 할머니만은 달랐다. 새어머니가 어려워서 인지,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신 아버지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할머니는 절대 손을 벌리시지 않았다.
배가 고파 사자밥을 훔쳐 먹어야 할 때도, 할머니는 절대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우리 엄마는 아주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자기 할머니가 진짜 할머니가 아닌걸, 다 클 때까지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엄마 말로는 할머니가 이모나 삼촌들 자식은 예뻐하지 않았지만, 우리 엄마를 포함해 할머니의 자식들만 예뻐했다고 한다. 절대 손 벌리지 않는 우리 할머니가 예뻐서였을까. 우리 할머니의 자식들에게 큰 사랑을 줬다고 했다.
할머니는 자식들 배곯게 하지 않기 위해, 산을 넘고 들을 넘어 장사를 하러 다니셨다. 그 어두운 밤에 산을 넘었을 할머니를 생각하면 숨 막히게 아프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아버지에게 손 벌리지 않았다. 돈이 정 필요하면, 아버지 땅에서 일을 해 품삯을 받았지 절대 그냥 받는 법이 없으셨다. 지키고자 하는 것을 할머니의 고통과 절대 맞바꾸지 않았다.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면서,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이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한층 더 진하게 느낀다. 신념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신념을 가지는 것조차도 사치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면. 할머니의 그 마음을 다 헤아리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만이 남는다.
그 강인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면서도 지켜야 하는 그 자존심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글씨 한 자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할머니의 두 다리를 곧게 세운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할머니가 존경스럽다.
할머니처럼 지구 끝까지 지켜야 할 그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