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께 드리는 결혼반지 ep.1
"결혼반지, 스튜디오 촬영, 프러포즈는 안 하기로 했어요."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부모님께 정식으로 남자 친구와 인사드리러 간 날 했던 말이다. 사실 허락이란 말도 거창하다. 오랜 기간 연애하며 남자 친구는 우리 가족과 크리스마스, 명절, 이사 등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해왔다. 그래도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는 자리니, 한눈에 봐도 상견례 장소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곳에 예약을 했다. 코스 음식이 쉴 새 없이 서빙되는 가운데 본론을 꺼냈다.
"이미 말해서 알겠지만, 결혼식은 9월쯤에 하고 싶고. 결혼식에 대한 아무런 꿈이 없으니, 결혼반지, 스튜디오 촬영, 프러포즈 비용 아껴서 기부하기로 했어요!" 엄마 아빠는 흠짓 놀라셨다. 다른 건 다 상관없지만, 반지는 꼭 하라는 아빠와 가장 이쁠 때 사진 촬영은 해야지 않겠냐는 엄마의 말을 차분히 들었다. 하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닌, 해야 해서 하는 삶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엄마 아빠 말이 틀린 거 하나 없지만, 굳이 정답만을 쫓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내린 결론이었다. 많은 사람이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것도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고, 해야 하는 걸 해야 하는 순간의 연속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결혼마저 직장생활처럼 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결혼반지와 스튜디오 촬영, 프러포즈 아니 사실 결혼식마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을 위해 결혼식은 하기로 결정했다. 내 선택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거나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싶진 않다. 부모님에게 결혼식이 중요한 걸 알기에, 하기 싫어도 엄마 아빠가 행복하다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반지나 스튜디오 촬영, 프러포즈 같은 부대 이벤트 정도는 나의 영역이었다. 다행히 남자 친구도 이에 동의해주었다.
인생의 중대한 변곡점 앞에서,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일을 시작으로 해왔다. 석사과정에 입학했을 때는 십일조 헌금을,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월드비전 정기기부를 시작했다. 결혼이라는 또 다른 변곡점의 시작을 독거노인을 위한 기부로 하고 싶었다. 결혼반지, 스튜디오 촬영, 프러포즈를 대략 200만 원으로 잡고, 총 600만 원의 금액을 절약해 그만큼 기부를 하기로 계획했다.
독거노인께 드리는 결혼반지 ep.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