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상담을 받게 되다니 - 2
여행을 가는 것만큼이나 여행 계획 짜는 걸 좋아하는 부류, 바로 나다. 계획을 세우는 게 정말, 진심으로 재밌다. MBTI 끝자리가 J인, P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계획형 인간이, 바로 나다. 근데 왜 P는 P이고, J는 J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두 번째 상담 시간에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상담선생님 : 오늘은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나 : 제가 늘 이것저것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려고 해요.. 욕심이 많은 것 같은 데 그것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상담선생님 : 회사 다니면서, 학업을 하고 계신 거 말하는 거예요? 그건 지금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닐까요? 그것에 대해 더 얘기할 게 있나요?
나 : 사실 그것 말고도 더 있어요. 박사공부를 하면서 경매도 하고, 이직준비도 하고, 주식도 하고 심지어 최근에는 창업도 도전했었어요.
상담선생님 : 정말 부지런하시네요. 왜 그렇게 많은 걸 한꺼번에 하려고 하세요?
나 : 제가 성격이 정말 급해요. 빨리 돈도 벌고 싶고, 학위도 따고 싶고, 경력도 쌓고 싶고.. 욕심도 많아서 이런 것들을 빨리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 같아요.
상담선생님 : 한 번에 여러 일들을 처리하려고 하면 힘들지 않나요?
나 : 정말 힘들긴 하죠. 그렇지만 지금 열심히 살지 않으면, 나중에 더 힘들게 살 것만 같으니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방책인 것 같아요.
상담선생님 : 멀티플레이가 되기만 한다면야 사실 아주 능률이 좋다는 이야기니까 긍정적인 것 같네요. 하지만 에너지를 분산해야 하는 만큼 집중력도 떨어질 테고, 효율도 떨어질 거예요. 늘 그랬나요?
나 : 네, 사실 석사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했고, 그때도 참 많이 힘들었어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빨리 좋은 곳으로 취업도 하고 싶고 학위도 따고 싶었어요.
상담선생님 : 어떻게 보면 능력이 많으신 거고, 또 어떻게 보면 참 피곤하겠네요.
나 : 석사 때처럼 살고 싶진 않아요. 그땐 회사-학교-집만 무한반복해서 별 기억도 없어요. 그저 힘들게 대중교통 타고, 무거운 가방 짊어지고 다니고, 늦게까지 과제했던 그런 힘든 기억밖에는요.
상담선생님 : 힘드실 거 같아요. 자기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겠지만, 왜 그런지 생각해 봤어요?
나 : 잘 모르겠어요. 성격이 빠르고 욕심이 많아서..?
상담선생님 : 제가 보기에는 통제감이 강박관념처럼 있어서 그래요. 늘 계획을 세우죠? 계획이 생각대로 안되면 어때요?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도 있죠? 그러니 백업 계획도 만들게 되는 거예요. 실패할 때를 대비해서 B플랜, C플랜을 세우는 거죠. 여러 계획을 세워놔야 통제할 수 있으니까. 통제감이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높으세요. 나를, 가족을, 연인을 통제하려 들고, 통제대로 안 되면 짜증이 나는 거죠.
통제감은 나를 오랫동안 감싸고 있는 감정이다. 계획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은, 통제할 수 있다는 만족감에서 오는 감정이었다. 요리조리 늘 스스로를 바쁘게 만들었던 것도, 여러 씨를 뿌려놓아서 어느 것 하나는 싹이 트겠지 하는 안정감에서 오는 본능이었다. 그래야 상황이 뒤틀렸을 때 통제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상담선생님은 이렇게 통제감이 높은 사람들이 유능하기까지 한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도 높고, 자기 만족감도 높다고 했다. 하지만 통제감이 높은 사람들에게 자주 찾아오는 감정은 '짜증'일 때가 많단다. 실로 그랬다. 세상은 통제할 수 없는 것 투성인데, 그 휘용돌이에 몸을 맡기지 않고 꿋꿋이 서있으려 하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파도를 서핑하는 그런 유연한 삶을 살 수도 있을 텐데, 나는 겁도 많고 탈도 많아 쉬이 그렇게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 통제가 이제는 강박으로까지 전이되고 있었다. 미래를, 관계를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어느새 강박관념처럼 굳어버린 것이다. 이제 문제를 알았으니,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차례다. 세 번째 세션이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