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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짹짹 Jan 17. 2021

세상에서 제일 내 흠을 못 보는 사람


할머니가 보고 싶다.


큰 이모의 이혼으로, 할머니의 묘를 이장했다. 아니, 이혼의 시발점이 할머니의 묘 이장이었을지도 모른다.


양지바른 곳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나란히 묻어드린 날, 엄마와 이모들, 외삼촌 모두 참 많이 울었다. 나는 왠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저 먼 곳, 언젠간 닿을 그곳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을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눈에 나는 언제나 반짝거리는 작은 별이었다. 성적이 바닥으로 고꾸라 치든, 살이 뒤룩뒤룩 찌든, 못된 마음으로 나쁜 말을 내뱉든, 나는 언제나 할머니의 보속같이 귀한 손녀였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부모님에게도 받으면, 드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사랑은 퍼가도, 퍼가도 마르지 않는 우물같이 깊었다.


천둥번개 치는 날에는 늘 할머니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를 대신해 어린 두 남매를 봐주러 잠깐 할머니가 와 계셨다. 날이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천둥번개가 몰아쳤다. 할머니는 번개 맞으면 큰 일이라며 전등, TV를 다 끄기 시작했다. 지금도 겁이 많지만, 그때는 불도 못 끄고 자는 겁쟁이였다. 평소에도 껌껌한 걸 무서워하는데, 천둥번개 치는 밤에 얼마나 무서웠겠나. 구석으로 가서 벌벌 떠는 나와 동생을 할머니는 꼭 안아 주셨다.


그 밤이 잊히지 않는다. 무서워서 이를 딱딱거리는 나를 꼭 안아주던 할머니, 그 따뜻한 품이 그립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던, 문맹이셨던 할머니가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밤. 그 밤이 너무 그립다.





할머니가 묻힌 땅은 큰 이모부의 땅이었다. 큰 이모는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적에 큰 이모부와 재혼했다고 한다. 큰 이모를 만날 때면 얼굴 가득, 웃음을 짓고 내 얼굴을 쓰다듬는 모습이 마치 할머니 같아 마음이 몽글해지곤 했다. 큰 이모부도 너털웃음 지으며 "ㅇㅇ이 왔냐? 볼 때마다 이뻐진다." 하며 반겨주셨었다. 하지만 큰 이모부와 큰 이모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자세한 속사정은 모른다. 엄마와 둘째 이모가 큰 이모를 안타까워했다는 것 정도 밖에는. 안타까움이 분노가 된 사건이 바로 할머니 묘 이장이었다. 큰 이모부가 할머니와 할어버지가 묻힌 땅을 팔아야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큰 이모는 물론, 엄마, 외삼촌 모두 분노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며. 큰 이모의 이혼이 이 사건이 발화점이 되었는지, 이혼으로 인해 이 사건이 나온 것인지 엄마에게 묻지 않았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디 다쳤을까. 어디 아프진 않을까. 하루에도 세 번씩 전화를 걸던 할머니였다.

세상에서 내 흠을 제일 못 보는 사람이였다.


깊은 주름을 손으로 하나 둘 쓸어내리며 할머니하고 나지막이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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