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ING

by 박찬수

...ING

-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다시 들춰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 내 아내


세상과 소통하지 않으려는 불치병에 걸린 여주인공과 그 소통을 이어 주는 남주인공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이다. "... ING"라는 제목에서와 같이 사랑은 계속된다는 잔잔하고 맑은 여운을 주는 영화다.

하늘에서 남주가 구름을 바탕으로 한 우산을 여주에게 내려주는 씬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는다.


아내와 나는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났다.

성당에서 선후배 관계로 만났고, 사회에 나오면 네 살 터울은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당시의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느껴지곤 했었다.

마냥 어릴 때 봐온 중학생의 아이가 지금의 아내가 되기까지의 스토리는 너무 길기에 조금씩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내는 내가 첫사랑이라고 한다.

세월이 흘러 돌고 돌아 만나게 되었다만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믿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나를 위아래로 보며 "왜?"라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럼 되려 그 사람을 위아래로 보며 "왜?"라는 표정을 짓는다.

처음 만났을 즈음 아내는 이 사람이랑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정말 무시무시한 생각을 그 당시에 했다는 건데 가끔 아내는 나와의 결혼에 대해서 "쟁취했다"라고 표현하며 뭔가 뿌듯한 표정을 짓곤 한다.

나도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좋아해 주나 라는 생각에 기분도 좋아서 황송하고 고맙기까지 하다.

그때 당시에 시사회에 당첨이 되어 "... ING"라는 영화를 같이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김래원 배우님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이 영화를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용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였고, 감독님과 배우분들이 나와 인사까지 하는 깜짝 이벤트가 있었다.

그 후 9년이 지나, 나는 대학에서 "... ING" 감독님의 특강을 듣게 되었는데, 지금도 가장 친한 촬영전공의 동생이 감독님께 사인을 받자며, 각자 극장에서 본 "... ING"영화표를 가져오자고 하였다.

수업이 끝나고 사인을 받으러 갔는데 알고 보니 그 촬영전공의 친구와 나는 같은 시사회를 본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동생의 인연도 신기하고, 내 아내와의 인연도 신기하다. 살면 살 수록 인연이라는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힘이 있는 듯하다.

아내는 24년을 알고 지냈고 나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나와는 다른 성향의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나라는 자유 분방하고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확신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언젠가는 그래도 이것저것 놀 거 다 놀면 자신한테 오겠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확 불타 올랐다가 확 사라지는 것이 요즘의 연애 감정이고, 호르몬 장난이라고들 하는데 이렇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묵묵히 평생을 기다렸다는 것에 대해 말을 하다 보면 나보다 더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확실히 느껴진다.

(아내가 이 글을 요즘 보고 있다.)

아내는 요즘에는 육아로 지쳐 아이를 재우고 육퇴를 하며 밤에 침대에 나란히 누울 때, 잠이 안 온다고 늘 투정을 하곤 한다.

그것은 하루 종일 육아에 몸은 지쳤으나 그래도 정신만큼은 핸드폰도 보고, 자유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누리고 싶다는 몸부림일 테지. 하고 생각한다. 그 투정을 받아 주는 시간에 우리는 만담식 농담을 하곤 하는데


며칠을 계속해서 나에게 잠을 재워달라고 하길래


남 : 그럼 잠시 번쩍 할 거야

여 : 응?

남 : 그리곤 내일 개운하게 일어날 수도 있어

여 : 박치기하겠다는 소리야?

남 : 어

여 : 그럼 내가 할래

남 : 어? 난 별로 지금 기절해서 자고 싶지 않은데? 그러다 나만 기절해서 잠들면?

여 : 그건 그거대로 좋은 거 아닐까?

남 : 그럼 둘 다 한꺼번에 기절하길 바라야겠다. 그치?

이런 농담을 주고받다가 어제는 번박(번쩍 박치기 : 우리가 줄임말로 부른다)을 하지 않고 손으로 나를 번박 하겠다고 한다.


남 : 어? 이건 그냥 기절도 안 할 거 같고 나는 그냥 기분만 나쁠 거 같은데?

여 : 그게 목적 아닐까?


이런 대화를 하며 우리는 잠든 아기 옆에서 하루의 마감을 웃음으로 마무리하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이제는 10개월이 되어 아빠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엄마의 껌딱지가 된 시기이다.

그만큼 엄마는 참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요즘 소꿉장난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이를 같이 키우면서 어릴 적 반짝이 풀을 떠올리기도 하고, 서로가 알고 있는 동요를 다시금 불러 보고, 어릴 적 친구와 했던 놀이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 등등을 하나씩 이야기하다 보면 왠지 우리가 어린아이가 되어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공동육아의 최대의 장점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를 할 때나 성인이 되고 나서 풍선 부는 법과 풍선 묶는 법을 진지하게 서로 이야기할 이유가 별로 없지 않은가? 최근에도 비눗방울을 문방구에서 사서 불며 우리 셋은 어린아이와 같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되곤 했다.

그리고 이미 다 가 본 놀이동산을 적극적으로 동물이 있는 곳이나 식물이 있는 곳을 다시 서치 해 보게 된 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단출해지는 일상에 축복 같은 일이다.

이런 일상에 나는 최대한 옆에서 묵묵히 집안일과 아기 돌보는 것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

맛있는걸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아내의 입으로 넣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아내와의 에피소드는 차고 넘치기 때문에 일단은 최근 근황만 써보았다.

다음 에피소드는 아내가 나에게 순장을 권한 것을 써보려고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들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