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사람 Mar 17. 2021

좋은 기억만 줄게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보면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책에서 본 어느 신경학자의 말이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 감정,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저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되는 그런 기억들조차 모여서 나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감사한 마음이 솟는다. 좋은 기억들을 줘서 지금의 나를 만들고 결정해 준 사람들이 하나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다른 이들에게 어떤 기억을 줬을까. 악몽 같은 기억을 준 적은 없었나.


 사실 조금 전 집에서 동생과 바락바락 악을 써가며 싸웠다. 나이 서른을 앞두고 아직도 조그만 일에 쉽게 흥분해서 그렇게 유치하게 싸운 행동이 정확히 소리를 지르고 5분 뒤에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싸울 때는 상처를 더 많이 주는 쪽이 이긴다고 생각을 하는 건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까지 막 내뱉었기 때문이다. 어느 멜로 영화의 제목처럼 머릿속 기억을 지우개로 지울 수 있다면 내가 했던 말들을 쏙쏙 지우고 싶어졌다. 미안해서 눈물까지 날 정도였다. 그렇게 화를 낼 때는 언제고 급 잘못을 뉘우치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고 어이없다.


  아주 어릴 적 식탐이 왕성하던 시절 동생이랑 젤리 반쪽도 나눠먹기 아까워했던 내 모습을 동생은 기억한다. 적어도 20년이 지난 그 이야기를 아직도 가끔씩 꺼내곤 한다.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렸는지 너무 창피하기도 하고 지금은 어느 집 누나들보다 더 잘해주는데 그런 건 기억 못 하고 그때 일만 들추는 게 좀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아직도 그 얘기를 하나 싶기도 하다. 어찌 됐든 기억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골라서 저장하는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에 내가 기억되고 싶지 않은 부분을 남이 기억하는 것이 억울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내 기억도 과장이나 왜곡이 없는 온전한 기억이라고 자신할 수 없기에.


 이렇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는데 기억이 모여 그 사람의 인격까지 정할 수가 있다는 건 정말 무서운 말인 것 같다. 누군가의 인생에 내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영향을 준다는 소리가 그냥 간단하게 흘려 들리지가 않는다. 큰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동생에게 막말했던 게 더욱 미안해졌다. 오늘 사건을 빌미로 20년 뒤에 "누나가 그렇게 말했었잖아"라고 하진 않을까, 동생에게 새로운 상처를 준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앞으로는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말과 행동을 하기 전 잠시 진정을 한 후 신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을 따뜻하게 만드는 그런 좋은 기억만 전하는 사람이고 싶은데 오늘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너무 속상하다. 조심해야겠다.

동생아 미안. 앞으론 좋은 기억만 주는 누나가 되어볼게.

작가의 이전글 열정을 못 따라가는 몸뚱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