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까르르 대며 웃고 떠들다가 공부를 시작하니까 급 돌변하더니,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은 기세로 집중하는 친구의 모습에 반한 적이 있다. 멋있어 보여서 나도 미간에 주름까지 써가며 책을 뚫어지듯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아마 나에겐 그런 불빛이 안 나왔거나 나왔어도 금방 꺼졌을 것이다. 나의 집중하는 능력은 어떤 한도에 많이 못 미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힘이 좀 달리긴 하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긴 시간 집중을 해야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태껏 별문제 없이 잘 살아왔다. 하지만 수험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문제가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공부를 해야 되는데 자꾸 딴생각이 머릿속에 똬리를 트는 것이다. 이건 정말 문제였다.
온 우주의 힘을 빌려서 집중을 하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 그것도 정말 쓸데없는 생각들이다. 아, 만약 그 생각들을 다 글로 옮길 능력만 있다면 영화 몇 편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었겠다. 그렇게 되면 쓸모가 좀 있었을 텐데 아쉽다.
평소에 그런 공상을 많이 해서 그런지 꿈도 정말 희한한 걸 많이 꾼다. 그리고 그 상황을 꿈 밖으로 생생히 전달해준다. 잠꼬대를 하는 것이다. 한두 번이면 재밌는 꿈을 꾸는구나 싶겠지만 이게 매일 그러면 멀쩡히 듣는 사람은 걱정하는 수준이 된다. 나도 내가 걱정이 된다. 정신에 문제가 있는 건가 하고.
짧게 집중하고 오래 딴짓을 하다 보면 계획했던 일을 못 끝내는 날이 많아진다. 그러면 그 계획들은 계속 뒤로 조금씩 밀려난다. 결국 전체적인 결과는 좋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암담하다. 그래서 정말 고치고 싶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그렇게 나쁜 현상은 되풀이된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니까 자신감은 떨어지고 성적도 자연스럽게 같이 떨어진다.
나는 왜 이렇게 일을 아퀴 짓는 힘이 부족한 걸까. 엄마는 늘 나에게 정신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정신력만 있으면 충분히 설교시간에 안 졸 수 있고, 아침에 알람 한 번이면 일어날 수 있다는 등의 말씀을 자주 하신다. 이쯤 되면 정말 정신에 문제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고민을 알고 약을 올리는지 인터넷에서 그때그때 유행하는 성격 검사를 할 때마다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하다 따위의 결과가 나온다. 열정을 가지고 일은 벌였는데 그걸 끈질기게 견뎌서 성공시키는 지구력이나 집중력 따위가 적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평소 너무 고치고 싶었던 단점인데 그렇게 콕 집어서 지적해주니까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오늘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팩트로 두들겨 맞은 느낌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ADHD를 앓고 있다는 어떤 작가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증세가 의심되는 수준이 아닌 병원에서 의사의 정확한 진단을 받은 사람이었다. 병의 특징과 그것을 앓고 있다는 걸 깨닫고 상태를 평가받는 과정 등의 내용이 있었다. 브런치에서 대상을 받은 글이었다.
꽤 긴 글이었는데도 빠져들어 금세 읽게 만드는 문장들이었다. 댓글창은 찬사로 가득하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주의력 결핍증이 있는 사람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글솜씨가 훌륭해서도 있지만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다른 이유는 너무 공감이 되어서였다. 멀찌감치 바라보며 세상엔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관찰자 느낌의 흥미가 아니었다. 나와 결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거의 내 이야기 같았다.
그 글을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인터넷에서 ADHD 검사를 찾아보게 되었다. 당연히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것만큼 정확할 순 없지만 간이로 해보는 테스트였다. 결과는 의심되는 수준의 2배의 숫자가 나왔다. 솔직히 조금 충격이었다. 한 번 더 신중하게 해 봤지만 같은 수치가 나온다. 믿을 수 없어서 나랑 비슷해 보이는 친구에게 해보게 했는데 친구의 결과는 정상이다. 나에게 문제가 있긴 있구나를 깨닫는다.
조금 슬펐다. 항상 하루의 시작에 세워놓은 것들을 제대로 끝마치는 적이 없었고 그것들이 다시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자신감과 자존감마저도 많이 떨어뜨렸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비밀을 이제야 알게 된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슬픔도 금방 까먹는 건지 다시 긍정적인 마음이 채워진다. 나는 집중력이 안 좋지만 집중을 안 하는 만큼 다른 창의적인 생각을 한다. 초등학교 때는 똥에 대한 시를 여러 편 썼고 중학교 때는 수업을 열심히 듣는 대신 선생님에 대한 시를 과목별로 열심히 썼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남자 친구랑 헤어지고 감성이 폭발해서 쓴 작품들은 그야말로 작품이다. 돌아보니 어릴 때부터 항상 무언가 쓰고 그리고 만들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왜 공부를 안 하고 그런 짓을 했을까 라는 후회는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열심히 기록하고 창작활동을 해온 것이 기특하다. 그것들은 지금 나에게 소중한 재산이다.
잘하고 좋아하는 게 따로 있으니 공부를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열정은 있는데 몸이, 아니 정신이 따라주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에 또 생각이 번져가며 우울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단점이 나의 장점이었다는 사실까지 생각이 도달하니 심란함을 멈출 수 있었다.
하자는 있지만 난 꽤 괜찮은 인간이야 라고 오늘도 정신승리를 해본다. 집중하기는 여전히 힘들겠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