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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밍키 Mar 24. 2021

세상 사람 모두 나의 선생님

 에세이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않았었다.

 에세이는 다른 문학의 장르와 다르게 갖추어야 할 고유의 형식이라고 할 게 특별히 없다. 때문에 글쓰기에 대해 따로 배우지 않은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쓸 수 있다. 체험한 사건이나 느낀 감정을 글로 쓸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에세이의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필은 깊이가 얕을 거라는 막연한 오해를 했었다. 글 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너무나 평범한 이들도 쓸 수 있는 글이다. 그 이야기들이 과연 나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의심을 한 것이다. 나도 경험할 만큼 한 것 같은데 굳이 재미없는 활자 속에서 인생의 가르침을 받을 게 또 남아 있을까. 소설을 많이 읽으면 언어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데, 차라리 그 시간에 소설책 한 권을 더 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특히나 그저 토닥토닥 위로를 주는 식의 책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뻔한 내용만 가득할 것 같았다.




 인기 있다고 해서 읽었다가 별 감동이 없어 실망했던 경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유성처럼 등장했다가 반짝하기만 하고 아무런 메아리 없이 사라져 버리는 책들도 간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몇 번밖에 겪지 않은 일로 편견이 생겼다는 말은 다 변명이다. 솔직히 내가 너무 건방졌던 게 가장 큰 이유이다. 다른 사람이 경험하고 느낀 교훈이 나에게는 별 소용이 없을 거라고 오만을 떨었었다. 직접 부딪쳐서 피부로 느끼는 것만이 진짜라고 여겼다. 결론은 그건 다 너무나 잘못된 생각이었다.


 자기가 몸소 겪으면서 생생하게 체험하고 깨우치는 일은 가치가 있다. 하지만 타인의 인생을 통해서 알게 되는 간접적인 깨달음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글머리에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과거 시제로 말을 꺼낸 이유는 지금은 그 어떤 문학의 갈래보다도 좋아졌기 때문이다. 정해진 틀이 없이 자유롭게 쓰면 된다는 특징 덕분에 그저 백수 나부랭이인 내가 과분하게 이 곳에서 작가라는 이름을 얻을 수도 있었다.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용기를 받았다는 건 에세이가 좋아지는 데 조그만 보탬만 됐을 뿐이다. 그 매력에 빠지게 된 진짜 이유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다른 삶들에서 배울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보통 사람들보다 더 힘든 나날을 보내온 이들의 글은 그 이상으로 그렇다. 글감이 넘친다는 점이 살짝 부럽기도 했지만 그 인생과 바꿀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 정도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을 지나온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정말 작은 일에도 징징대며 살아왔구나 반성도 하게 되면서 말이다.




  합격자의 공부법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게 세상 제일가는 시간 낭비라고 여겼던 적이 있다. 그럴 시간에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각자 맞는 방식이 다른데 남의 방법을 들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나의 큰 오산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최근에 본 공부법 영상을 통해 약 30년 만에 나에게 맞는 효율적인 공부법을 찾게 되었다. 참 비효율적인 이야기다. 진작 관심을 갖고 찾아볼 걸 후회가 된다.


 내 경험만 의지하고 살면 안되겠다는 걸 느꼈다. 나쁜 돌이라도 자신의 옥돌을 다듬는 데 쓸 수 있다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 처절하게 깨달은 지혜를 거저 나눠주겠다는 걸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 앞으로는 만나는 모두가 나의 스승이라는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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